슬픈 꿈
슬픈 꿈
오늘도 여느 때처럼 장난감, 간식거리, 기저귀 등등을 주렁주렁 매달은 유모차에 이제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영차 안아 올려 앉힌다. 아이의 식사와 식사 사이 그리고 볕이 좋은 시간에는 늘 유모차를 끌고 동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거나 놀이터에 멈춰서 엉거주춤 걷는 아이가 혹여 다치지 않게 신경을 쏟는다.
어! 그런데 저쪽 골목 맞은편에서 낯익은 얼굴이 나에게 다가온다. 고등학교 동창 이은영.
내가 아는 이은영은 소위 날라리.
이은영은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소란스럽게 떠들어서 다른 친구들 공부하는데 방해를 하거나, 이상하게 오늘은 공부가 잘되네 싶어서 교실을 둘러보면 그런 날은 이은영이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교실에 없었다.
나는 이은영 같은 날라리와는 잘 섞이지 않던 범생이.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기를 쓰고 공부만 해서 SKY 대학을 갔고, 이은영은 예상대로 어디 지방대에 갔다고 들었었다.
15년여 만에 처음 보는 이은영이 나에게 다가와서 아는 척을 한다.
"어머! 너 민주 아니야? 오랜만이다. 너 SKY대 졸업하고 회사 다닌다는 얘기 전해 들었어. 잘 지내니? 요즘 무슨 일해?"
"아.. 나는 외국계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아기 돌봐... 너는 무슨 일 하니?"
"나는 네가 다니던 SKY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야. 나는 너도 계속 심리학 공부하고 학계에 남을 줄 알았었는데..."
"응... 그렇게 됐네..."
"그랬구나... 나 지금 가봐야 돼서 다음에 또 보자!"
이은영과의 뜻밖의 만남 이후 뭔지 모를 화끈거림이 머리 끝까지 퍼지더니 가슴 한편이 찌르르하다. 서둘러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앉히고 집으로 도망치듯이 돌아가는데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아,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 왜 자꾸 눈물이 나지? 엉엉 엉엉엉....'
현관에 들어서자 한 방울 두 방울 솟아오르던 꾹꾹 눌러놨던 눈물이 왈칵 터져서 유모차에서 아이를 꺼낼 틈도 없이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즐거운 나들이길에서 막 돌아온 아이는 얼굴이 벌게지고 눈과 코가 퉁퉁 부어서 엉엉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아앙~~~~"
"엉엉엉 엉엉 엉엉......"
오늘도 똑같은 꿈이다.
가슴이 저릿하고 눈가엔 눈물이 흐른 흔적도 있다.
아침부터 슬프다.
이은영은 졸업하고 만난 적도 없다.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꾸만 내 꿈에 나타나서 한 번은 잘 나가는 대기업 직장인, 또 한 번은 대형 일간지 기자가 되어서 나를 울리더니, 이번엔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심리학과 조교수가 되어있다.
학창 시절에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이은영이었는데 내 꿈에는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강 스트라이크로 날리고 늘 바쁘게 사라진다.
꿈 속이지만 나는 왜 이은영을 만날 때에는 늘 아이가 흘린 음식이 묻어있는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는 건지...
표정이 축 쳐져서 곧 다 흘러내려 없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잠에서 깨서 인기척을 보낸다.
"옹냐옹냐~ 까르르~~~ 맘마~ 옹냐옹냐~"
한참을 옹알이를 하는데 아이가 만들어내는 소리가 너무 사랑스럽다.
소리만 녹음을 해놔야 하나? 아니면 동영상으로 찍어놓을까? 갑자기 이런저런 궁리를 하느라 나를 울린 이은영은 저 멀리 사라진다.
아이의 토실토실 보들보들한 볼에 뽀뽀를 하고 간지럽히며 아이의 냄새를 맡다가 얼른 힘차게 몸을 일으킨다.
얼른 우리 아기 이유식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