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번 국도에서 석양을 보다 (2)

by Angela Gus
링크를 눌러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면 더 좋습니다


“당신이로군요! 바로 당신이에요! 마지막으로 마법사님을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거든요. 내가 너에게 어떤 대답을 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마법을 푸는 주문을 알려줄 거라고요!”


지은은 당황했다. 어쩌면 냇 킹 콜의 수많은 노래 중에 답이 숨겨져 있을 것도 같지만 갑작스러운 전개에 머릿속 주크박스는 작동을 멈추어 버렸다.


“아, 어떡하죠. 죄송해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노래 제목일 뿐이에요. 심지어 발음도 달라요. 그 노래는 스페인어거든요. 그러니까 원래 제목은 <Quizás, Quizás, Quizás>인데,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라…… 저는 마법의 주문 같은 걸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건 그냥 우연일 거예요.”


아이의 눈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정말 미안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 거예요. 아마 곧 만나게 될 거예요.”


아이의 눈이 슬퍼졌다. 지은은 고개를 돌려 아이의 눈을 피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두 사람의 시선이 자석처럼 붙어버린 것 같았다. 아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해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네요.”


지은도 아이를 따라 붉은 하늘로 눈을 돌렸다. 지평선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다시 차분해진 아이가 말했다.


“오늘은 녹색 광선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태양이 완전히 넘어갈 때 아주 잠깐 보인다는 녹색 광선 말인가요?”


아이는 지은이 녹색 광선을 알고 있는 것이 반갑다는 듯 물었다. 아이도 반갑다는 듯 되물었다.


“네. 보신 적 있나요?”


“직접 본 적은 없고요. 영화에서 봤어요.”


“어떤 영화인가요?”


“에릭 로메르 감독이 만든 <녹색광선>이라는 영화예요. 주인공 이름은 델핀에요. 델핀은 복잡한 사람이에요. 외로워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고집을 꺾지는 못해요. 반면에 자기 확신은 없어서 카드 점에 의존하고요. 영화 내내 델핀은 뜻대로 되는 게 없다가 마지막에 결국 녹색광선을 보게 돼요.”


“보고 나서는 어떻게 돼요?”


“알 수 없어요. 영화는 거기서 끝나거든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모든 게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은은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어쩌면 둘 다 일수도 있어요. 델핀이 녹색광선을 보는 순간에 관객도 같이 녹색광선을 보게 돼요. 1초보다도 짧았던 것 같아요. 눈 깜빡이는 타이밍을 잘 못 맞추면 놓칠 수 있을 만큼 짧아요. 비록 스크린을 통해서였지만 ‘찰나’라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델핀이 녹색광선을 보고 싶어 했던 이유가 뭐였던 녹색광선을 본 순간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냥 그 순간을 경험했다는 걸로 다 이루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도 모든 게 바뀌는 거죠. 녹색광선을 본 적 있으세요?”


“전 스물두 번 봤어요. 그런데 진짜 녹색광선을 본 것인지, 녹색광선을 보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착시였는지는 모르겠어요. 늘 혼자였으니까요. 소원에 관해서는 순서가 바뀌어 버릴 수 있거든요. 어떤 현상이 나타날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나면, 이루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현상을 만들어버려요. 운동선수들이 이기기 위한 징크스를 일부러 만드는 것처럼 말이에요. 방금도 그랬던 거죠. 당신은 어떤 노래를 떠올렸을 뿐인데 저는 마법의 주문을 알려 줄 사람을 만났다고 착각해 버렸잖아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미안해야 하는 쪽은 저죠. 혼자 멋대로 착각한 거잖아요. 미안하게 해서 미안해요.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요.”


“저한테요? 뭐가요?”


“드디어 제가 정말 녹색광선을 봤는지 확인해 줄 사람을 만났으니까요. 오늘 당신에게 확인을 받으면 지금까지 보았던 스물두 번의 녹색광선도 내 착각이 아니었던 게 되겠죠. 그러면 스물두 번의 녹색광선을 보면서 빌었던 소원이 한꺼번에 이루어질지도 모르죠.”


“스물두 번 모두 마법의 주문을 알려 줄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빌었나요?”


“네.”


“꼭 만났으면 좋겠네요. 저도 같은 소원을 빌게요.”


“아니에요. 본인의 소원을 빌어야죠.”


“제 소원은 다음번 녹색광선에 빌게요. 누군가 스물두 번이나 볼 수 있는 거라면 저도 살면서 최소한 한번 정도는 더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고마워요.”


“그런데 오늘 녹색광선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시나 봐요.”


“네. 석양을 이천 마흔다섯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지은은 잠시 고민하다 소년에게 물었다.


“석양을 이천 마흔다섯 번 보는 동안 늘 혼자였나요?”


아이는 어린 왕자처럼 지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손톱 끝만큼 남은 태양이 붉은 하늘 속에서 금빛을 뿜으며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태양은 지평선에 붓을 살짝 덴 듯 짧은 금빛 방울로 변했다. 금빛 방울은 영롱한 녹색 빛으로 응축되면서 사라졌다. 지은과 소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은의 표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이천 마흔여섯 번째 석양에서 스물세 번째 녹색광선을 보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방금 사라진 태양처럼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지은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 순간, 지은은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Winter Wonderland _녹색광선.jpg ChatGPT가 그려주었습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1화66번 국도에서 석양을 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