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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 꿈을 꾸는 여자, 루씨

북 런던 여성 전용 폐쇄 병동


나는 아프리카의 끝으로 갔어.

강물은 무지개 색, 늪에는 악어떼.

악어의 등에 타 하늘을 나는 황홀경.


나는 다시 갈거야.

상처받은 이들의 고향, 희망봉으로.


터무니 없이 비싸기만 남아공의 중독 재활원에서

나는 그를 만났네

 .

아프리카의 태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의 긴 속눈썹

코카인보다 아찔하고 헤로인보다 감미로워.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그가 내게 준 것은

꽃다발 대신 후천성 면역 결핍증


우리는 서로 뒤엉킨 채  

늪으로, 늪으로...더 깊이 사랑하겠지.


나는 아프리카의 끝으로 도망치고 말거야.

모든 생의 종착역으로.



_루씨의 노래 "희망봉", 안젤라 센 2009년


 




"안젤라, 나도 예쁘게 화장하고 밖을 다니고 싶어.
하지만, 난 영원히 그럴 수 없겠지..."


북 런던 정신과 폐쇄 병동에서:

20대 중반 정도일까? 루씨는 어린 나이에 벌써 거대한 삶의 굴곡에 으스러져 있었다. 그녀의 증상은 마치 낮에도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하다.

그녀의 공식 병명은 조현병이다.

 

루씨가 꾸는 한낮의 꿈을 의사는 환각이라고 부른다. 밤에 꾸는 꿈은 깨면 그만이지만  루씨의 꿈은 그렇지 않다.


"쉿----!

방금 이 소리 들려?

병원 천장 위의 파이프가 거미줄 처럼 엉켜있어.

내 머릿속의 생각들이 파이프를 통해 녹음 될거야.

누군가 내 뒤를 쫒을지도 모르지.  

아니, 누군가가 이미 내 뒤를 쫒고 있어.

나는 다시 아프리카의 끝으로 도망치고 말거야."


의식의 흐름은 논리적인 과정을 몇 단계 뛰어 넘어 두서 없이 들린다.

온갖 트라우마와 부정하고 싶은 욕망은 그녀만의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어 얼핏 들어보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 놓거나 시를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퍼즐의 조각을 맞추다 보면 곧 이해 할 만한 서사가 펼쳐진다.

 



그녀는 병원 천장 위에 숨어 있는 파이프가 자신의 생각을 훔쳐가고 녹음하며 그것이 소셜 미디어에 송출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믿는 망상과 환각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말 참혹하다. 자신의 내밀한 약점과 감추고픈 비밀이 만천하에 노출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악플을 달고 손가락질 한다고 믿는 루씨.

자신을 받아 주는 단 한 사람, 남아프리카에서 만난 '그'와 함께 한 사랑의 대가는 가혹해서, 꽃다발 대신 HIV와 (상상)임신으로 이어졌고 아이마저 곧 사산 했다고 믿는 루씨…

망상과 환각이 빈 틈 없이 짜여 진 지옥같은 세계관에 갇혀 그녀는 오늘도 고통 받는다.


환각 (hallucination)의 내용은 본인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우리가 밤에 꿈을 꾸는 도중에 내 입맛대로 꿈의 각본을 다시 쓰거나, 꿈을 꾸는 도중에 '그나저나, 이건 단지 꿈이란다.'라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 그녀의 증상도 그렇다.

외롭고, 두렵고 슬픈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는 루씨. 나는 그녀의 꿈속에 걸어들어가 기꺼이 고통의 목격자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 내는 그녀에게 이제 혼자가 아니라고, 현실과 이어주는 내가 옆에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준다.

 

심리치료사로서 루씨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섭고 슬프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꿈이란다.' 하고 환각을 '지켜볼' 수 있도록 훈련 시켜 주는 것이다. 환각의 내용 자체를 완전히 없애거나 의지대로 조절하기는 힘들지만, 환각에 반응하지 않고 이와 더불어 사는 방법은 가능하다.


  




안정을 찾은 루씨가 폐쇄 병동에서 나간지 한달 만에 다시 경찰에 인계되어  돌아왔다.

리볼빙 도어 (Revolving door), 회전문...

병동을 나갔던 환자가 다시  재발하여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을 우리는 회전문이라고 부른다.

안인지 밖인지 모른 채, 회전문 안에서 병원 안팎을 뱅뱅 도는 루씨는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동년배인 듯 했던 나와 루씨.

결국 우리는 둘 다 정신과 폐쇄 병동 안에 있다. 하지만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나는 명찰을 달고 있고 그녀는 명찰이 없다.

그리고 나는 퇴근 시간이면 집으로 가고 그녀는 병동에 남는다.

내가 명찰을 달지 않았다면 누가 환자인지 치료사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저런 사람들은 위험해. 사회와 격리시켜야지

프랑스 철학자 미쉘 푸코는 ’정상’ 사회에서 ‘비정상‘을 격리 함으로써 정신과 시스템이 감옥과 같은 처벌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비교해서 현재 영국의 정신과는 인권의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영국의 통계를 보면 조현병 환자가 범죄 가해자가 될 확률보다 피해자가 될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고 이 통계는 매년 뚜렷한 변화 없이 일정한 편이다. 하지만 조현병=범죄자와 같은 공식으로 낙인 찍기와 공포를 조장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이는 한국의 사정도 덜하지 않은 것 같다.


정신과 시스템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가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가족 조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런던의 뒷골목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은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든다. 결국 약물 중독으로 조현병의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마음이 힘들어서 약물에 기대고, 약물에 기대면 더 마음이 힘들어 진다.


조현병과 마약 중독, 이 둘이 만들어 내는 '악의 춤'은 무도회가 진행될 수록 음악이 빨라지며 폭주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진다.

마치 루씨가 '그'와 뒤엉켜 춤을 추다가 늪에 빠져버리는 환상처럼…


그렇게 도망치듯 환상으로 달아난 그녀는 아프리카의 끝, 희망봉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모든 이름은 가명이며 사례는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했다는 점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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