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큰딸도 좋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결혼했다.
(중략)
임신하고 출산이 임박하자 사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누가 기르느냐가 문제였다.
시댁은 시골이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 아니면 길러줄 사람이 없었다.
딸의 일을 위해서 내 일을 희생하느냐 마느냐로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가정을 가진 여자가
일을 갖기 위해서는
딴 여자를 하나 희생시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느낌은
매우 맥 빠지고 낭패스러운 것이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글을 읽다 잠시였지만 도우미 이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던 때가 떠올랐다.
큰아이 하나만 있을 때는 엄마가 봐주셨지만 둘째 아이까지 봐 달라고는 말씀드릴 수는 없었기에 선택한 일이었다.
네 명의 딸을 키워내느라 애쓰신 엄마에게 노년의 여유를 더 이상 빼앗을 권리가 내게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은 직장 내 어린이집도 많이 생겼고, 돌보미 서비스도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지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딸을 가진 엄마이든
아들을 가진 엄마이든
지금의 내 아이이든
미래의 내 손자 손녀이든
일하는 엄마를 대신하여
“아이를 누가 기르느냐”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없는 것 같다.
오늘같이 주말이 끝난 월요일의 아침.
다른 평일보다 유난히 더 엄마와 떨어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허둥지둥 출근했을 엄마들에게
직접 전하지는 못하지만
맘속으로나마 응원의 말을 속삭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