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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상상할 때 변화하는 삶

미래가 미래에게 보내는 편지

by 에벌띵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혹은 미래의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는 일이었다. 나의 편지는 아흔을 훌쩍 넘긴 내가 떠나버린 엄마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엄마, 거긴 어때요? 이제 편안한가? 아니면 여전히 우리 걱정 중이셔?
밥은 먹었냐, 아픈 데는 없냐, 쉬는 날은 뭐 할 거냐, 나한테 그걸 물어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엄청 허전한데... 엄마는 어떠우?
엄마 이랬어 저랬어, 엄마 이것 봐요 저것 봐요, 엄마 이거 해요 저거 해요, 엄마 엄마, 쫓아다니는 내가 없어서 좀 허전하신가? 아니면 속 시원하신가?
엄마, 나도 이제 엄마가 하늘 갔던 나이에 가까워 가요. 그러니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나네요.
귀찮도록 만들어 주시던 김치가 오랫동안 그리웠어요. 아무에게도 말 안 했지만, 그랬어요. 꾹꾹 참고 그냥 견뎠어.
대문을 열고 들어 서면 현관문을 열고 나와 "이제 오냐? 재미있더냐? 피곤하지는 않냐? 밥은 챙겨 먹었냐?" 묻던 엄마 목소리가 간절했지만, 그냥,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양 살았어요. 힘들어서 이사도 해버렸는데, 괜히 했나 봐요. 한 번씩, 아무도 몰래 우리가 살았던 집 앞에 가서 한참 앉았다 온다우.
거긴 좀 어때요? 나도 이제 나이가 드니 혼자 남겨 두고 갈 딸이 걱정이네. 제 할 일 잘하고 사는데도 걱정이 내려놔지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영락없이 엄마 딸이다 싶어요.
엄마는 거길 어떻게 갔대? 걸음이 떨어지시던가? 난 엄마처럼 못해낼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요. 그래도 엄마 딸이니 희망을 좀 걸어볼까?
나는 엄마처럼 김치야 된장이야 안 만들어 두고 가려고 해요. 싹 비워버려야지 싶어. 엄마가 두고 가신 걸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그러 안고 살다 나 없을 때 애들 아빠가 싹 치웠더라고요. 얼마나 싸웠나 몰라.
엄마, 거기 가면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안아볼 수 있겠죠? 그때가 언제일지 몰라도 엄마가 나 마중 나와줘요.
밥은 먹었냐, 재밌더냐, 힘들지는 않았냐, 예전처럼 물어봐 줘요, 엄마. 아버지도 같이요. 그때 내가 아이처럼 울어도 좀 봐주고...


죽음으로 맞을 이별을 생각해 보는 힘은 강력하다. 용서 못 할 일이 없고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감사고 귀한 선물이 된다. 삶의 기준이 달라진다. 제대로 잘 살아야 하는 절대적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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