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의 삶이 힘든 이유는 ‘관계’때문이라고 했다. 그 관계에서 생겨난 감정 때문에 삶은 고통스럽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 힘들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다.
다행스럽게 나는 이런저런 인간관계로 고통을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믿었던 친구로부터 뒤통수 한 번쯤은 가격 당해 본 경험이 있으리라(없어도 있다고 해주시길). 나는 없다.
뻥이다.
내 숏컷 머리카락을 들춰 본다면 뒤통수에 남다른 굳은살을 발견할 수 있을 게다. 평생에 걸쳐 성실히 맞으면 생긴다. 단단한 두피와 뼈를 가지고 싶다면 당신도 지금부터 분발하시길.
10년 넘게 피와 살을 나눈 양 , 간도 쓸개도 빼 주려는 양 다정했던 친구 A가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의 저면에는 ‘선의’가 있기 마련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나라는 인간이 의심 없이 빠져들기 좋은 유형이었다. 게다가 A에겐 내 심금을 울리다 못해 쥐어짜는 아픈 사연까지 있었다. 주변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슬픔을 가진 A, 나는 단 한순간도 그녀에게 약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남편은 A를 싫어했다. 가까지 하지 말라는 경고를 수 없이 했다.
“당신 등골에 빨대 꼽고 있는 사람이야. 그 뭐야, 에너지 뱀파이어? 그래, 딱 그거다!”
그에 대한 내 답은 늘 한결같았다.
“아냐, 당신이 잘 몰라서 그래. A도 사정이 있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내 진심을 알아줄 거야. 더 기다려볼래.” 상급 호구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남편이 100% 옳았다. 이미 예견된 A과의 치졸한 결말은 15년 만에 드러났다.
수년 전이었다면 아마 여러 달 끙끙 앓아누웠을지도 모를 일방적이고도 모멸적 차단과 내침을 당하고도 나는 제법 의연했다.
상처로 점철된 가슴을 부여 안고 모든 인간관계를 멀리하며 칩거에 들어갔던 과거와 달랐다.
나 다움을 잃지 않는 것, 내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 보다 나를 먼저 안아주는 것, 한 사람으로 인해 다수를 일반화하지 않는 것, 캐캐묵은 인연이 떠남으로 생긴 심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대외 활동을 늘리고,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에너지가 남아돌았다. 하루 종일 적극적 소통을 하고 돌아와도 피곤한 줄 몰랐다. 날마다 내일이 기대되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 A의 빈자리가 한 동안 허전했다. 그럼에도 난 지금이 편안하다. 내가 나로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로이 표현해도 괜찮은 사람들 안에서 만족한 웃음이 나니까.
Kourosh Qaffari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583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