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혓바닥

by 에벌띵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 있다면 말에 가시가 빠졌다는 것이다.

혓바닥에 칼을 품어 광란의 춤을 추던 시절이 있었다. 말하기를 즐기지만 말을 하고 나면 쉽게 지치는 기질 때문에 종종 과묵하다는 오해를 받던 때였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니 만만히 보였던지 깜빡이 없이 선 넘는 이들이 도전장을 내밀고는 했다. 그럴 때면 나의 전 남자 친구(현 남편)는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전 남자 친구와 나는 11년 연애했다. 그 사이에 두어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는데 그 공백을 용케 알아챈 남정네가 내게 연애를 걸었다. 요즘 말로 썸을 탔다.

투박한 된장 같은 경상도 남자만 만나던 내게 레몬 향 듬뿍 얹은 빠다 같은 서울 남정네는 2G 폰만 쓰던 10대에게 Z 플립 폰을 쥐어준 격이었다. 어찌나 요상스럽게 달달하던지. 자칫 나를 갖다 바칠 뻔했다.


다행히 고추장에 고추 찍어 먹고 자란 경상도 여자인 내가 레몬 빠다에 얼마 안 가 질렸다. 예쁜 외양 안에 시커먼 속내가 비릿한 남자였다. 제단 앞에서 호다닥, 용케 도망쳤다.


이 레몬 빠다 남이 다시 나타난 건 우연이었다. SNS의 알고리즘이 그와 나를 후킹해 엮었다. 둘 다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룬 상태였고, 이런 신박한 일도 있구나 싶어 반갑게 인사했다.

그게 불찰이었다. 시커멓고 비린 속내를 그는 너무 쉽게 되새김질했다. 불륜의 바다에 함께 발 담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가을이라 바람이 좋으니 산책 가지 않으련?’ 하듯 했다.


결혼과 육아로 깊숙한 곳에 고이 숨겨뒀던 세치 칼날을 꺼내 들었다. 백정의 칼 춤, 곧 사라질 형장의 이슬을 슬퍼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정성껏 육두문자를 박아 넣었다. 쓸데없이 열정적이었다.



6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간혹 생각나는 사건이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금이라면 자뻑부터 하지 않았을까?

“어머나, 내가 아직도 먹히는 거야? 웬일이니~!!!” 진심으로 기뻐했을 테다.

어이없는 중에도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을 그에게 메시지 캡처 본과 음성 녹음 파일 하나를 보내겠다. 그리고 차단. 깔끔.


아니, 잠깐, 보자 하니, 가시가 빠진 게 아니라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닌가….??



Pixaba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6993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