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름은 ‘재목’이다. 하얀 얼굴에 만찢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잘났던 이 남자를 처음 만난 대학 3학년 때였다. 외모보다 이름이 더 도드라져 멈칫했던 기억이 있다.
뭐지?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서준, 민준, 준하…. 이런 이름이 찰떡일 듯한 얼굴을 하고, 재목이라니? 신이 완벽하게 빚어 놓은 작품에 굳이 재 뿌린 느낌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남편은 선생님과 상사에게 ‘이 나라의 훌륭한 ‘재목’이 되어라’ 같은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너 하나 불태워 나라를 빛내라는 의미 같아 즐겁지 않았다 했다.
그 이름 때문인지, 사람들이 농담처럼 건넨 말에 염원이 담겨서인지, 남편은 자꾸만 자신을 불태워 주변의 밑거름이 되려 한다.
난 남편보다 성실한 직장인을 단언컨대 본 적 없다. 일을 미루거나 대리하는 법도 없고 9시가 출근시간임에도 매일 6시 30분 이면 집을 나선다. 퇴근은 가장 늦다. 연차도 어지간하면 안 쓴다.
결혼하고 몇 년간 쉬는 날이면 시도 때도, 예고도 없이 불러내는 시부모님의 호출에 남편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하고서도 시부모님의 ‘고사리 뜯으러 가자’ ‘너의 이모집에 데려다줘라’ ‘고향에 친구 만나러 가게 데려다줘라’ ‘고추 가지러 시골 가자’ 등등 온갖 부름에 쫓아다녔다. 결국 바짝바짝 말라가는, 착해빠진 이 남자를 보다 못해 내가 시부모님께 대거리를 했다. 당신들 흥취에 아들이 닳아 가는 건 안 보이시냐고, 이제 부모님 아들 아니고 내 남편이니 그만 부려 먹으라 했다. 되바라진 못돼 먹은 며느리 타이틀을 얻었다. 만족스럽다.
남편은 종종 ‘안 먹는 거 있으면 나 줘.’라고 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먹다 질려서 남기는 거 있으면 달라는 뜻이다. 시어머님이 그리 키웠다. 먹다 남긴 음식을 쓸어다 남편에게 몰아주는 걸 보고 기함했다.
그래서 남편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낸다. 당신이 음식물쓰레기통도 아니고, 남이 먹다 질린 걸 왜 먹느냐고. 유통기한 다 된 건 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끊으라 한다. 그러면 겸연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으며 남편은 ‘난 괜찮은데….’한다. 자신을 하대하는 모습이 속상해 내가 광광 울어댄 어느 날부터는 조심하는 듯하다.
아이가 점점 자라고 우리 부부는 나이 들어간다.
불안한 남편은 가족의 밑거름이 될 작정을 하는가 보다. 자신을 불태워 딸과 내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지 퇴근 후 아르바이트를 해도 되냐고, 내게 허락을 구한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당신은 무쇠냐고, 차라리 내가 어디 가서 설거지라도 할 테니 어림반푼어치 없는 소리 하지 말랬더니 그건 또 죽어도 싫다 한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은 남편 목숨 값이다. 그 사람의 피와 살을 내어 주고 뼈를 갈아 받아오는 생명 값이다. 많고 적음을 떠나 귀하고 고맙다. 하지만 이 남자,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신을 갈아 붙일 작정을 한다. 닳고 닳아 없어지면 나 혼자 무슨 재미로 살라고 이러는지….
재목, 당신은 그냥 당신이면 돼. 당신을 불태워 우리를 빛내주지 않아도 우린 당신을 사랑해. 그러니 쉬 쉬엄쉬엄하자. 나도 있잖아. 그러니 혼자 다 하려 말고 나한테 기대도 괜찮아. 작아도 강단 있는 여자니까. 이제 내가 당신의 ‘재목’이 되어볼게!!
Igor Haritanovic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69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