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이고 싶다. 주머니는 두둑하고 입은 무거운 그런 어른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는데 주머니는 깃털처럼 가볍다. 입은, 주머니에 비해 무겁지만…. 진정한 무게를 가졌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무거워야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노심초사하다 한세월이다.
딸이 두 돌은 넘었을 무렵이었던가? 대중목욕탕을 좋아했던 딸과 뜨끈한 물에 씻고 나왔을 때 만난, 허리가 꼬부라지고 주름이 가득하던 어르신. 냉가슴 앓던 나를 데워준 분이었다.
“애미야, 힘들제?” 처음 본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거친 손이 따스웠다. 그 어른의 지혜로운 말씀이 아직도 뜨끈하게 남아 힘겨울 때마다, 고비가 올 때마다, ‘기냥 견디라, 견디믄 다 지나가고, 지나가믄 또 살아진다. 별처럼 예쁜 새끼보고 애미는 견디는기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힘이 난다.
오랜 인연의 냉담과 험담으로 나라는 존재를 의심하던 때에 만난 또 다른 어른.
“자기가 얼마나 햇살 같은 사람인지 알아? 언제 봐도 환한 미소로 환대해 주는 자기를 만난 날이면 하루 종일 싱글벙글하게 돼. 자긴 그런 사람이야. 위로가 되는 사람이야. 자기를 못 믿겠으면 내 말을 믿어. 그럼 돼!”
오늘도 뵙고 왔다. 헤어질 때면 안아주는 품이 따뜻해 목구멍이 따가웠다.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 커피 향이 정말 좋아요!” 했다. 이튿날 커다란 커피 온 봉지를 내 앞에 툭 내려놓으시는 게 아닌가. “이거 다 마시라. 별것도 아인 거를 좋다 카이 내가 진짜 좋다 아이가.” 츤데레 경상도 할매의 표본이었던, 아카데미 회원 분의 다정한 눈빛이, 땅으로 꺼질 듯했던 내 어깨를 한껏 치켜세워주었다.
도슨트 활동을 하며 온종일 떠들고 걷고,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정신이 나갈 것 같던 순간,
“내가 선생님 설명 듣고 이 전시회가 너무 좋아졌어요. 늙은이가 따라다녀서 힘들었을 텐데, 진심으로 설명해 주고 질문도 들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만나러 올게요.” 청년의 혈기를 여전히 간직한 채 반짝이는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내 손을 잡아주었던 연세 지긋했던 관객이 있었다. 한참 어린 내게 허리를 연신 숙이며 고마움을 몇 번이고 전했던 그 어른께 겸양을 배웠다.
돌아보면 아슬아슬 바스러질 듯 연약했던 내 마음을 데우고 토닥여 살아볼 만하게 했던 어른들은 부유해 보이진 않았다. 입이 천금처럼 무겁지도 않았다.
애정으로 지켜보고, 내 필요를 가늠하고, 진심을 담은 마음을 여상하게 건네셨다. 너로 인해 내가 행복하다, 고맙다, 충분하다, 스며드는 따뜻함을 간직한 분들이었다.
Matheus Bertelli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73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