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좋한 여행

by 에벌띵

‘집 밖을 나서서 걷는 모든 길은 여행이다’는 게 나의 개똥철학이다. 비슷하거나 똑같아 보이는 곳을 다니지만 마주치는 사람은 다르다. 새로운 만남과 이야기가 있는데 여행이 아닐 리가 없다.

내 여행 메이트는 대부분 딸이다. 가벼운 운동복차림에 물 한 병들고 가는 둘만의 여행을 우린 좋아한다. 차로 바쁘게 이동하며 지나치기만 했던 거리를 거닐며 구석구석 돌아본다. 우리를 스쳐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재미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도 본다. 간혹 이야기의 결말을 듣기 위해 일부러 따라다니기도 한다. 놀랍도록 흥미롭기도 밍밍하니 싱겁기도 하다.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설 때엔 좀 더 많은 걸 준비한다. 걷다 지치면 아무 카페나 들어가 쉬어야 하니 책은 필수템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부러 사람이 많은 길을 택한다. 경주 황리단길이 딱이다. 요일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북적인다. 낯선 이와 어깨를 부딪히기도 하고, 굳이 그 복잡한 길을 달리는 차들을 피하다 보면 골치 아픈 생각이 사라진다.

날씨가 좋으면 봉황대로 간다. 아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숨겨뒀던 고민을 털어놓는다. 천년을 견뎌 온 고분을 마주하고 나누다 보면 ‘그까짓 거 별 거 아니네’하게 된다. 뻥 뚫린 하늘에 위로를 받는다.


버스로 여섯 정거장은 가야 도착하는 카페가 있다. 가장 편안한 신발을 신고 우리 모녀는 걷기로 한다.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기도, 좁은 인도를 앞서거서니 뒤서거니 걷기도 하며 가는 길이 때론 고되다. 편안히 차로 움직일 걸 후회도 한다. 특히 한 여름이 그렇다. 하지만 요즘처럼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은 괜찮다. 걷는 재미가 있다. 오들오들 떨며 출발했던 건 새까맣게 잊고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카페에 도착하면 아이스 음료를 시켜야지 한다.

그렇게 도착한 고즈넉한 카페에 자리하면 그때부터는 마냥 재미있다. 책을 읽어도 술술, 대화를 나눠도 하하 호호, 추억을 만든다.


우린 오늘도 여행을 다녀왔다. 버스로 이동하다 어느 지점에서 내가 먼저 하차했다. 자신의 여행을 가는 딸에게 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딸이 자라니 우리의 짧은 여행 스타일도 조금씩 달라진다. 각자의 짧은 여행을 하고 다시 만나기로 한다. 짧은 헤어짐 안에 있을 서로의 경험을 곧 나눌 테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로, 별 것 아닌 것도 별 것인 양 즐겁게, 특별하게.





Nubia Navarro (nubikini)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8600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