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속도가 매우 늦다. 매달 50권의 책을 읽는 사람을 본 적 있는데 나에겐 신기의 수준이었다.
소설은 제법 빨리 읽는다. 작가의 필력에 홀려 나도 모르게 따라간 덕이이다.
주로 사회과학 분야 책을 선택한 탓도 있으려나? 600 쪽 분량의 책을 읽으려면 2주는 족히 걸린다. 저자와 투닥거리며 읽는데 문장문장마다 멈춰 서서 따지고 들어서 그렇다.
읽기가 산책하는 정도라면 사고는 100m 달리기다. 그 간극이 클수록 읽기는 더디다. 홀로 뻗어 가는 생각을 멈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덕에 책은 늘 지저분하다. 여백이 여백이 아니게 된다.
쓰는 독서라 불리는 필사는 더 난공불락이다. 그나마 성경 필사를 가장 오래 했는데 ‘신앙’이란 절대 조건이 붙은 덕이었다. 다른 모든 필사는 늘 하다 말다 한다.
훌륭한 작가들의 문장을 쓰는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주로 이 사람은 어떤 연유로 이 문장을 썼을까? 내가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표현할까? 작가는 여전히 이 문장에 동의할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필사하다 말고 작가와 또 투닥거리고 있는 내가 보였다.
여러 날 들고 다닌 책이 꼬질꼬질하다. 빨리 읽고 다른 걸로 바꿔야지, 꼬질 해진 책을 볼 때마다 다짐하지만 내일도 같은 책을 들고 다닐게 분명하다. 모레는 꼭 다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Ann H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5246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