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막내 사위

by 에벌띵

엄마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셨다는 외할아버지 제삿날은 설 명절 이틀 전이다.

외할아버지의 제삿날을 앞두고 외할머니(이하 할머니라 칭하겠다)는 커다란 독 가득 술을 담그셨다. 밥알이 동동 떠 있어 식혜인 줄 알고 코를 들이밀었다 시큼하고 톡 쏘는 향에 “윽!”하고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담근 술이 얼마나 맛났는지 제삿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뜨끈하게 구워낸 전과 나물에 “캬!” 소리를 내며 시큼한 술을 들이켜는 사람들 사이에 할머니가 계셨다.


맛보는 사람마다 극찬했던 담금주를 할머니가 아끼고 귀히 여긴, 막내 사위였던 아버지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말 술 마시게 생겨서 한 잔도 못 마시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대신 달달한 식혜를 오직 막내 사위를 위해 해놓으셨다. 게다가 입맛조차 까다로운 아버지 위한 국과 반찬도 따로 준비됐다.

“김 서방 국이랑 반찬 따로 챙겨서 한 상 차려 오니라. 김 서방 좋아하는 식혜도 한 그릇 담아 오고." 할머니는 살갑게 곁에 앉는 사위를 아랫목으로 이끌며 외숙모들에게 일렀다. 그러면 올케들 눈치가 보였는 엄마는 아버지를 향해 작게 책망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할머니의 막내 사위 사랑은 유별했다. 훤하게 잘 생긴 사위, 키도 훤칠해 보기 좋은 사위, 귀한 막내딸만큼이나 귀한 내 사위, 할머니는 그러셨다. 그 사랑이 유별스러워 할머니의 세 아들, 나의 외삼촌들은 불만이었다.

“ 김 서방을 어무이 아들 하소!”했다.


마흔도 되기 전에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는 오 남매를 키우려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하셨다. 아끼지 않은 몸은 노년에 이런저런 병으로 탈을 냈다. 가장 큰 문제는 당뇨였다. 매일 당뇨를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맞으셔야 했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큰 외삼촌 가족들은 손사래 쳤다.

아들보다 귀하다, 예쁘다 했던 아버지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할머니를 찾았다. 당뇨 수치를 측정하고 인슐린 주사를 놔 드렸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장모와 사위는 매일 주사 바늘을 사이에 두고 만났다.



할머니가 떠나신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 아끼시던 막내 사위도 할아버지가 될 만큼의 세월이 지났다. 할머니 손맛을 그대로 닮은 엄마가 시금장을 담그는 날이면 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간보라며 건넨 시금장을 맛보며 “장모님 보고 싶네.” 하신다.



할머니, 할머니 막내 사위가 내일모레 수술을 받아요. 암이 생겼대요.

할머니, 귀하다 예쁘다 잘났다 하며 사랑했던 막내 사위 잘 지켜주세요. 그 곁에 동동거리며 애면글면할 막내딸도, 할머니가 다독여 주세요.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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