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엄마가 을~~마나 똑똑했는지 아나? 수학을 맨날 100점 받았다 아이가. 학교 다니는 내내 100점 못 받은 적이 없데이.”
국민학교 다니던 내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외당숙은 귀가 닳도록 같은 말을 했다. 내 상의 9할이 엄마 덕분이라는 양, 내가 공부를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버지 유전자 탓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여읜 엄마는 긴 가방 끝을 갖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홀로 5남매를 키우던 외할머니의 짐을 덜기 위해서라도 자립해야 했다. 그게 천추의 한이었을까. 한때 엄마는 내 성적표를 자신의 성적표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몰아세웠다. 80점 대의 점수라도 나오는 날이면 집안 분위기는 살벌했다. 칼바람이 일렁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시험 치는 날마다 막내 동생은 간곡히 청했다.
“언니야, 시험 잘 치고 와. 다 100점 받아야 해.”
엄마는 몇 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수십 년간 손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던 엄마의 얼굴은 소녀처럼 맑게 빛났다.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냐며 손사래 치시던 책가방도 손수 마련하고 하고, 이른 저녁을 먹은 후 발갛게 상기된 뺨을 하고 우리에게 인사했다.
“엄마, 공부하고 올게.”
작고 동글동글한 몸을 가진 엄마의 뒷모습에서 빨간 가방을 둘러메고 투스텝으로 뛰어가는 어린아이가,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새침한 소녀가 보였다.
“아이고, 어렵다 어려워! 니 엄마 공부 좀 봐줘라.”
김치나 고추장을 가지러 1층에 내려갈 때면 엄마는 펼쳐 놓은 교재를 내게 내밀었다.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니가 보고 설명 좀 해도.”
그러면 나는 꽤 진지하게, 골머리가 아프다는 듯 불쑥 내밀어진 교재를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엄마가 내게 그랬듯, 정확한 답은 알려주지 않고 힌트만 툭 던졌다. 그러면 영민한 엄마는
“아~! 그게 그래 되나? 니가 설명해 주니까 알겠네. 역시 많이 배운 사람은 다르데이.” 하며 그 공을 내게 돌렸다. 때론 홈스쿨링하며 혼자 공부하는 손녀와 마주 앉아
“우리 손녀 정말 대단타. 할머니는 선생님이 다 알려주는데도 어렵던데, 니는 혼자 공부하는 거니까. 그게 얼마나 어렵노. 그 어려운 걸 우리 손녀가 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대단하노.” 동병상련의 정을 나눴다.
엄마는 단번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아버진 그런 엄마를 보며 당신의 성과라도 되는 양 어깨가 올라갔다.
“내가 뭐라 카더노. 당신은 해낸다 안 했나. 우리 마누라가 못하면 누가 하노!” 의기양양한 아버지였다.
“100점을 못 받아가…. 점수가 영 별로다.” 만점 집착인인 엄마는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고운 눈을 접어 웃었다. 해맑게, 소녀처럼.
배운다는 건 사람을 고취 세우는 일이다. 도전이고, 인내고, 감내하는 일이다. 자신도 몰랐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어쩌면 가장 능동적인 자기애의 방법이 아닐까.
배움은 사람을 청춘으로 돌린다. 잊고 있었던 치열함과 간절함이 피를 뜨겁게 데운다. 사람은 배움의 한가운데서 가장 젊다. 더불어 작은 성과가 따를 때 오랜만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기쁨이 있다.
자격증을 구경시켜 주며 엄마는 말했다.
“공부 그거 진짜 어렵드라. 그 어려운 걸 어리고 약한 니한테 모질게도 시킨 게 이번에 자꾸 생각나데? 늦었지만, 엄마가 미안타. 엄마, 아빠 꿈을 니 어깨에 얹어놓고…. 니 하고 싶은 것도 못하게 한 게 지금도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박여사 갑자기 왜 이래? 흐흐흐. 괜찮아요.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 아빠보다 더 잘 살라고…. 그게 최선이었다는 걸 나도 이젠 알아요.” 동글동글, 내 어깨 언저리에 오는 작은 엄마를 힘껏 안았다.
엄마의 배움은 우리의 오래된 흉터를 사라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