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태기

by 에벌띵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잔잔바리 영어공부를 했다. 영어를 쓰는 환경도 아니었고, 어마무시한 목적을 가진 것도 아닌 나에게 매일, 꾸준히, 잔잔바리로 해내가는 게 최선이었다.

하루 한 시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렇게 한 건 어림잡아 7년 정도였고 2년은 미친 듯했다. 9 to 10 일 때도, all day였을 때도 있었다.

하루 한 시간씩 매일 할 때 내 영어 실력은 정말 느리게, 점진적으로 성장했다. 내 머리가 나쁘거나 선생이 나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했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나면 훨씬 나아져있었다.

하루 열 시간 이상 공부할 시기에는 무섭게 늘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하다 보면 영어로 꿈꾸는 순간이 온다고. 반년 정도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하니 꿈에서 영어로 싸우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됐다.(내적 괴로움이 심했나 보다. 꿈에서도 싸운 걸 보면 ㅎㅎ)


그런데 말입니다~

분명하게 달라 보이는 두 과정에서 발견된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일정하게 찾아오는 슬럼프였다.


영어는 꾸준히 늘거나 성장하는 과목이 아니다. 하루 종일 깜지를 쓰며 단어를 외워도 머리에 남는 게 없고, 문법책을 씹어 먹듯 풀어도 내 머릿속 지우개가 성실히 지워버린다. 수학을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하버드도 갔겠다 싶을 만큼의 억울함이 누적되는 시기, 전문용어로 ‘영태기’라 부른다.


‘영태기’의 시기, 이때 많은 학생의 운명이 달라진다. 내 주제에 무슨, 하고 나가떨어진 학생은 영포자라는 오명을 쓰고, 그간 한 게 있는데 억울해서라도 한다, 이를 악 다문 학생은 며칠 가지 않아 도약한다. 그래서 영어의 성장은 계단에 비유되곤 한다. 계단 한 개의 폭이 너무 넓어서 문제지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영어 공부를 하며 가장 크게 깨우친 건 이렇다.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나만 어렵고, 나만 이 모양 이 꼴인 것 같은 순간, 억울함이 명치를 꽉 채워 숨이 눈물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 순간 바로 뒤에 폭발적 성장이 있다. 그 기간이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지만, 총량으로 따지고 들면 큰 차이가 없다. 단기간에 비약적 성장을 보인 사람은 9 to 10 했거나 하루 종일 그것만 했을 게다. 반대의 경우엔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일을 겸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놀이이든, 생계이든 간에.


인생이 괴롭지 않은 이유는 애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란 똑똑한 소리를 누군가 하지 않았나.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슬럼프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오는 선물이다. 단지 그 선물의 포장이 너무 단단해서 이걸 선물이라고 받은 건지 뭔지 지금의 내가 혼란스러운 것뿐이다.


나는 긴 슬럼프를 겪고 있다. 내 손에 들린 게 선물인가, 폭탄인가 하고 째려보는 중이다. 설령 똥일지라도 이제 열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차라리 폭탄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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