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를 기억하다

by 에벌띵

장르불문. 나는 대부분의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편이다. 스트레스는 받고 책은 읽어야겠는데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는 웹소설을 읽는다. 뻔한 클리셰, 보나 마나 한 결말일지라도 작가의 필력에 따라 밤을 꼴딱 새우기도 한다. 나이트와 클럽을 모두 향유했던 세대인 나는 힙합을 유독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새로운 힙합 곡이 발표되면 다른 장르보다 귀 기울여 듣는다.

가장 사랑하는 장르를 꼽자면, 책은 잘 모르겠다. 나이와 컨디션에 따라 들쑥날쑥한다.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음악은 확고하다. 클래식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대체불가 장르다.


딸이 초등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공연장에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찌나 좋았던지 학교 조퇴를 시켜 음악회에 데려가고는 했다. 그 습관이 여전해 우리 모녀는 한 달에 2번 정도는 음악회에 다닌다.



지난해, 그러니까 2025년 봄의 나는 유독 마음이 힘들었다. 모든 계절을 타긴 하지만, 유독 봄을 타나보다 싶을 정도로 마음 앓이를 했던 때에 내게 위로가 되었던 건 라흐마니노프였다.

특히 그의 교향곡 2번 3악장이 없었다면 그 봄의 시련을 어찌 지났을까 싶다.


곡의 시작됨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은 듣는 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을 한꺼번에 끌어올려 눈의 물기로 터트린다. 애썼어, 괜찮아, 나 여기 있어, 너 혼자 두지 않을게,라고 하는 것처럼 나를 확 껴안는다. 그리고 따라오는 클라리넷이 울컥 솟구친 감정을 다독여준다. 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친구처럼, 엄마처럼, 토닥인다.

이러니 감정이 복받치기 마련이다. 대중교통 안에서 듣다가는 사연 있는 여자가 되기 십상이라 혼자 있을 때, 가족도 모르게, 성능 좋은 이어폰에 의지해 들어야 한다. 한 번은 세 시간을 이곡만 들으며 서재에 틀어박히기도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을 발표하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로 인해 깊은 좌절과 슬럼프에 빠졌고 우울증까지 걸린 그는 수년간 단 한곡도 작곡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사정이 마치 나와 닮아 있어 그의 음악을 사랑하게 된 건 아닐까… 시간이 흘러 생각했다.


수년간 우울증 치료에 집중했던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협주곡 2번으로 화려한 재기에 성공하고 피아노협주곡 3번으로 쐐기를 박았다.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것 같던 교향곡 2번을 작곡해 130년 후의 수많은 사람들의 위안과 위로를 전한다.


깊은 좌절과 슬럼프를 지나며 우울증과 맞서는 모습이 나와 닮았던 라흐마니노프, 우울에 잠식되지 않고 뚫고 나온 그를 더욱 닮아가길 소망한다. 두렵지만, 숨이 막히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터널을 통과하며 배우고 느낀 나만의 것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세상과 나눌 수 있기를…. 그의 교향곡 2번을 들으며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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