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바다

by 에벌띵

엄마는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자라며 들은 이야기를 꿰어 맞춰보면 외할아버지는 어부였다. 바닷 일을 하며 시간이 날 때면 자식들 양말과 장갑 같은 걸 손수 뜨며 소일거리를 하셨다 했다. 요즘 MZ 남자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유행한다는 뜨개를 할아버지는 70년도 전에 이미 하셨던 게다.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바닷가에 터전을 마련해 살던 외가는 그해 많은 걸 잃었고 어떤 연유에서였는지 평야가 드넓은 농촌으로 이사했다.




외할머니를 여윈 지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엄마는 늙은 이모가 보고 싶다 셨다. 그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부모님을 따라나섰다. 열몇 살이 되고부터 좀처럼 하지 않던 짓을 서른 언저리가 되어서 했다.

엄마 고향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굽이굽이’라는 부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위장도 함께 굽이치는 통에 어찌나 고생스러웠던지.

소나무의 녹음과 바다의 푸름이 맞닿은 곳에 엄마의 이모가 계셨다. 이모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나는 엄마의 그리움이 훅, 온몸을 덮치는 열기처럼 다가왔다. 외할머니, 꿈에도 보고 싶던 외할머니가 우리 앞에 서계셨다.



바다처럼 거칠고 주름진 얼굴의 이모할머니와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엄마는 아버지께 바다로 가자셨다. 이미 온 사방이 바다인 곳에서 바다를 가자는 그 말을 아버지만 이해하신 듯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마을, 동해 특유의 거친 돌 바위가 삐죽이 솟아오른 바다에로 엄마는 거침없이 걸었다. 당연하다는 듯, 누군가 만날 사람이라도 있다는 듯이 나아가는 엄마 뒤를 나와 아버지가 따랐다.

원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닌 엄마는 그날따라 더 말이 없었다. 무엇을 찾는 듯, 무엇을 그리는 듯, 먼바다를 향해 열린 엄마의 커다란 눈동자가 아렸다.




“너희 외할아버지도 뜨개질을 기가 막히게 잘하셨는데… 네가 그 재주를 닮았을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와 볕 좋은 거실에서 소파를 등받이 삼아 기대어 뜨개질을 하던 중이었다.

“어찌나 다정하셨는지, 네 외삼촌들 것부터 내 것까지 겨울만 되면 양말부터 스웨터까지 떠주셨는데…. 그 험한 바다 일을 하면서도 자식들 입힐 거라고 쉴 틈도 없이 말이다.”

편물을 잡은 손은 쉼 없이 움직였지만 엄마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엄마의 고향 바닷가에서 보았던 그 눈, 그리움, 슬픔, 애틋함이 혼재되어 아릿한 그 눈은 기억의 바다를 헤매고 있었다. 돌아갈 수 없어 더 간절한 바다,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당신의 아버지를, 엄마의 바다에서는 만났기를 바랐다.


세월이 셀 수 없이 흐른 어느 날, 엄마의 그 바다가 내 바다가 될 어느 날, 엄마를 박은 듯 닮아 있을 내 그리움의 바다가 너무 아프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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