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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Nov 08. 2023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당신을 향한 나의 태도

"어떻게 그래?" 남편은 간혹 나를 이해하기 힘들어하며 한마디 툭 던졌다.

"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그에 대한 내 답은 그랬다.


사람 좋은 남편은 내가 누굴 만나 무엇을 하든지 관여하지 않는다. 소심하고 겁 많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데다 허튼짓하지 않을 거라 믿어주는 마음이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내가 하는 일, 만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한다. 남편에겐 내가 놓쳤거나 달리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을 잘 짚어 내는 안목이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오가며 정리되니 일석이조다.

그런 남편이 내게 수년간 정리하라 이르는 지인이 있다. 나에게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입혔고 미래에도 그럴 거라고 남편은 단언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지인의 세 치 혀로 인해 끊긴 관계가 여럿이고 업으로 삼으려 했던 일도 그만두었다. 그러니 남편이 보이는 반응은 매우 합당했고 이해됐다.

한동안 문제의 지인과 내 관계가 소원했다. 그가 던진 거친 비난에 내가 나가떨어진 연유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남편은 우리의 결별을 환영했다. 이 기회에 완전히 정리하라 이르기도 했다. 나도 남편의 말에 동의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런가? 얼마 가지 않아 나는 문제의 지인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을 모두 용서했다. 내 뜻을 전하자 남편은 기가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래?" 반문했다.


내 생애 가장 최악의 관계를 꼽으라면 남편의 가족들이'었'다. 과거형이지만 상처로 인한 흉터는 남아있다. 남편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걸 하게 욕지기를 던지고 안면몰수했을 사이, 죽어도 볼일 없을 사람들일 테다. 하지만 내겐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천륜을 끊을 수 없어 버티고 견디고 이겨낸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내 마음에서 뻗어 나간 미움이 방향을 잃고 남편을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본인도 어쩌지 못한 부모를 둔 죄에 대한 대가치곤 혹독했다. 당시의 나는 남편만 없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꽂혀 꽤나 오래 이혼을 주장했다.

"당신이 아니면 그런 모욕을 당하지 않아도 되잖아! 안 참아도 되잖아!!" 모든 잘못을 남편에게 돌렸다.


11년 동안의 연애. 사소한 갈등도 있었고, 이별한 때도 있었다. 우여와 곡절을 겪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와 영원히 헤어진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어여쁘고 어렸던 스물둘부터 공기처럼 물처럼 서로에게 당연했다. 그런 내가 결혼 5년도 되지 않아 이혼을 꿈꾸게 될 줄이야! 나도 그도 놀라고 당황했다.

이혼만은 안된다던 남편은 나와 마주치는 시간을 줄이려 새벽같이 출근해 한밤중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재롱을 느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이 집에 머무는 그 짧은 시간이 힘들었다. 눈만 마주치면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우리가 가엽고 무서웠다. 그 사이를 지키는 어린 딸을 보듬어야 하는 사실에도 화가 났다. 시가 어른들이 친 분탕질에 우리가 죽어났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늦게 퇴근한 남편이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눕는 게 보였다. 딸이 태어난 후로 위생에 극도로 예민해진 나를 위해 좀처럼 그런 일이 없던 사람이 샤워도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잠든 모습이 가슴 정중앙에 박혔다.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 없던 남자의 잠든 뒷모습이 너무 외롭고 가엾었다. 언제나 기댈만했던 너른 등이 아이의 것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저 사람이 정말 내 인생에서 사라져도 괜찮은지 나에게 물었다. 저렇게 밤낮으로 일만 하다, 삶의 기쁨 따위 누리지 못한 그가 하늘로 떠난대도 괜찮을지 나에게 물었다. 만약 그래도 괜찮다면 헤어져야지, 마음먹었다.


지난 4월 우린 결혼 15주년을 맞았다.

이 땅에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남편과의 미래를 떠올린 순간 나는 목놓아 울었다. 피곤에 절어 누웠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 달랠 만큼 울었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이 죽어서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상을 하니 심장이 짓이겨지는 것 같아서 그렇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내 통곡은 우리 가족의 새로워지는 변곡점이 되었다. 남편이 가진 내 삶의 지분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떤 잘못도 죽음 앞에 가져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란 깨달음이 모든 문제를 가볍게 했다.

그 발견은 최악의 관계로 남아 영원히 보지 않았을지도 몰랐을 시가 가족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나를 미치게 몰아대는 시가 사람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며 나는 수없이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이 이대로 우릴 떠나신다면 어때? 그래도 밉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고 그래? 그 정도야?' 곱씹어 물었다. 그리고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남편을 바라봤다. 부모와 영원한 이별을 한 후 힘들어할 남편이 그려졌다. 그래, 살아있으니 지지고 볶아대겠지. 살아있다면 서로 보듬을 때도 오겠지. 그렇게 나는 시가 어른들과 홀로 화해했다.


죽음을 이기는 건 없다. 그 앞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무력하다.

미워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죽음을 대입한다. 그가 죽어서 없어졌을 만큼 미우냐 묻는다. 그리고 그가 죽음으로 너를 떠난대도 미워할 자신이 있느냐 되묻는다. 언제나처럼 죽음의 압승으로 끝난다. 그걸 감당할 만큼 나는 강하지 않다는 걸 쉽게 인정한다.


남편이 절연하고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말라 했던 지인도 내겐 그런 존재였다. 만에 하나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가 소원한 시간에 그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나는 괜찮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잘못이 티끌처럼 보였다. 세상에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게 훨씬 쉽다. 그러니 나는 쉬운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잖아." 어이없어하는 남편의 손을 잡아 다독였다. 내 답에 남편은 언제나 그렇듯 피식, 잘난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그래, 당신은 그런 사람이지, 그래야 당신 답지." 결국 내 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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