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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만나는 우리의 아름다움

by 에벌띵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서 지인을 만났다. 각자 공부와 일에 쫓겨 바쁜 시간을 보내다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더치 페이가 원칙인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몇 마디의 안부를 주고받고, 아이들의 근황도 나누었다. 왠지 겉도는 이야기, 중요한 걸 놓치고 있나?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힘든 일이 있어 보이는데, 괜찮아?" 이럴 땐 허를 찔러야 한다.


봇물처럼 터진 말은 끝날 줄 몰랐다. 꾹꾹 눌러 터트리지 못한 분노와 우울이 와르르 쏟아져 조절이 안돼 보였다. 파르라니 떨기도 하고, 벌겋게 달아올라 분통을 터트리기도 하는 양 안에 숨겨진 상처가 벌겋게 드러났다.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그는 속의 것을 퍼내고 퍼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남편, 아이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 모임에 가면 할 말이 없다.


결혼 초, 시가 문제로 힘들었을 때 철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그저 내 속에 쌓인 걸 덜어 내고 싶었다.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든든했던 시간은 짧았다. 어느 날, 친구 집으로 나를 데리러 온 남편을 바라보던 친구의 눈빛을 지금도 기억한다. 혐오, 감정을 감추지 않았던 친구는 이튿날 내게 "네 남편 눈빛이 정말 별로야. 비열해 보였어."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남편 이야기를 타인에게 하지 않는다. 내 남편을 비열한 인간으로 만든 건 친구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정보만 준 탓이라 생각했다. 선하고 성실한 남편이 나의 세 치 혀 때문에 저평가받는 꼴을 보기 싫었다.


그런 시간이 쌓아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어려움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상처를 받아도, 힘든 일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삶이 편안하고 행복할 거라 짐작한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붙는 말은 한결같다.

"너는 편안하게 살잖아. 남편도, 아이도 말썽 부리지 않고... 얼마나 좋아?" 부러움이 분명한 덧붙임은 내 입을 더욱 다물게 만드는 줄 그들은 몰랐을 테다.


얼마 전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너는 네 이야기를 정말 안 하는 편인데 글은 또 다르더라? 정말 솔직하고 생전 네 입에서 듣지 못한 걸 많이 적어 놔서 놀랐어."


맞다. 나는 글에 내 감정과 생각을 쏟아 놓는다. 힘든 일이 있었냐는 내 물음에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지인처럼 끝도, 경계도 없이 드러낸다. 말고 달리 기록으로 남는 글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글은 나를 치유한다.


말로 나를 맘껏 드러내지 못하니 상처가 가실 날이 없다. 내 상처를 치유하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이의 감정을 잘 다독이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몸짓, 숨소리, 말 끝에 숨겨진 감정의 끝자락을 잡아 읽으면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맘껏, 양껏,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안의 응어리도 함께 씻겨간다. 내 삶이나 네 삶이나 거기서 거기구나, 공감이 일고 위안이 움튼다. 네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처를 붙들고 아름다운 소통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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