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삶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러한 투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과 같은 감정을 돌림으로써 부정할 수 있는 방어기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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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이 있다. 특별한 갈등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 이유 없이 싫을 때, 많은 경우 그 원인을 상대에게 돌린다. 내가 아닌 대상이 문제라 생각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어떤 부분이 특별히 불편하거나 불만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단점이거나 부정적인 면이 투영된 탓이라 한다.
반대로 이유도 없이 끌리는 사람의 경우도 그렇다. 평소 갈망하던 부분, 매력적이라 생각한 점을 가진 대상을 만나면 덮어 놓고 마음이 간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선 '투사'라 부른다.
오랜 시간 의지하던 친구가 있다. 함께 아이를 키우며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함께 했다. 그는 종종 내가 가진 형편과 능력에 대한 부러움을 표했다. 당찬 성격, 다른 이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화술, 평범을 조금 상회하는 경험치를 가진 나와 오래 잘 지내고 싶다 말하곤 했다.
그는 다정한 말투와 수줍은 미소를 가져 나와 뚜렷하게 대비됐다. 큰 이목구비로 자칫 화려해 보이는 나와 조신한 현모양처 상이 그를 두고
주변인들은 우리가 친한 이유를 모르겠다 토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돌쟁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는 시간만큼 서로에게 다정했다. '오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인간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관계에 갈등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장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그 유통기한이란 게 있지 않을까, 짐작했고 그 기한을 늘이기 위해 공들였다. 내가 가진 것 중 그가 원하는 건 아낌없이 내어주는 걸로 내 몫의 최선을 다했다.
인간관계는 상대에게 바랐던 기대와 성과가 얻어지지 못하면 와해된다. <인간관계론>에서는 이것을 '투자와 보상의 불균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얻는 성과가 줄어들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성과를 주는 관계가 맺어지면 지금의 친밀함은 부담이 된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은 눈에 쓰였던 콩깍지를 자발적으로 벗는다. 콩깍지를 벗는 데는 대단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아주 작은 실수, 별것 아닌 한 마디면 충분하다. 심리학에서 이 현상을 '투사의 철회'라고 한다. 철회, 냉정하고 차가운 말이 많은 걸 대변한다.
나와 오래 동행하고 싶다 열망한 그의 콩깍지도 그랬다. 나를 향한 동경, 호감이 사라지는 데는 큰 힘이 필요치 않았다. 바람 앞의 촛불도 그보다 견고하지 않을까. 그럴듯한 설명도 없이 간편한 톡으로 깃털보다 가볍게 철회됐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없듯, 싫어지는 데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 투사도 투사의 철회도 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럼 그 대상은 어쩌란 말인가.
내 경우엔 오랜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 말투, 표정, 행동, 사고방식, 모든 게 문제로 보였다. 내 무엇이 그에게 부정적이었을까, 나를 땅굴 파듯 했다.
시간은 많은 걸 해결한다. 자책도 절망도 시간의 흐름을 이기진 못한다. 다행히 시간은 공으로 흐르지 않는다. 나를 탐색하게 하는 동시에 원하든 원치 않든 상대의 소식도 물어다 준다.
나를 철회한 이유가 매우 이론적이라 허망했다. 그에게 대체할, 더 나은 성과를 가져다줄 관계가 생긴 것이다. 나름 철두철미한 그는 본인의 의지와 달리 제법 많은 단서를 흘리고 다녔고, 그것을 모아다 주는 사회시스템은 활발히 작동했다. 모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 새 같은 이들은 제법 많았다.
나는 철회의 형틀에 묶였던 나를 풀어주었다.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느껴져 힘들었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란 사실을 되뇌었다.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느끼는 동시에 또 다른 희망을 향해 고개 돌렸다. 여전히 이 세상엔 나와 동행하길 원하는, 내가 열망하는 존재가 수두룩 빽빽하다.
"신에겐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습니다."를 고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끌어안고, 수두룩 빽빽한 그들을 향하면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