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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Jun 04. 2019

사라 베이크웰의 프리즘에 비친 몽테뉴<어떻게 살것인가>

왜 그를 사랑하는가?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사라 베이크웰은 어떤 사람일까?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말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였다. 몽테뉴처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지의 겸양에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인도의 신 비슈누의 화신처럼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몽테뉴는 말할 것도 없고 몽테뉴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문헌과 역사에 해박한 이 책의 저자 베이크웰 앞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역자 후기를 덧붙여봐야 군더더기밖에 되지 않을 싶어 자괴감이 들지만..”(P486) 역자 김유신의 말이다.





이게 어디 역자의 느낌뿐이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너무 순진한 듯, 순수한 듯, 게으른 듯, 장난꾸러기인 듯, 또는 무모한 듯, 이기적인 듯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온 몽테뉴도 몽테뉴였지만, 몽테뉴의 삶을 여러 각도, 아니 모든 각도에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부터 시작해서 사후 그의 책에 역본에 대한 여러 사건까지 낱낱이 파헤친 여성 사라 베이크웰.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그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으며, 개인적인 시선에서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각도까지 그렇게 예리하게 그려낼 수 있었는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몽테뉴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몽테뉴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사라 베이크웰이다라고 말했을 것 같은 한 사람.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마리 드 구르네에게 있어 강력한 라이벌이자 경쟁자이며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몽테뉴에 대해 쓰기 전에 사라 베이크웰은 대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사라 베이크웰은 영국의 남쪽 해변가인 Bournemoth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여행을 좋아했는지 그녀는 어린 시절을 부모님과 여행을 하면서 스위스로 러시아로 여행을 다닌다. 그러다가 머물게 된 곳이 호주였고, 해변이 가까운 시드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백패킹을 하며 태평양 섬과 동남아시아를 둘러 유럽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Essex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를 했고, Martin Heigegger에게 매혹되어 박사과정을 밟으려 했으나 무엇인가에 이끌려 포기를 하고 런던으로 옮기게 된다. 재밌는 것은 사라는 그곳에서 Tea Bag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엉뚱한 그녀인지. 그녀는 그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후 그녀는 몇 년 동안 서점에서 일을 하다가 ‘인공지능’으로 석사학위를 받게 된다. 그 후 카탈로거나 큐레이터로도 일을 했다.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였다. 현재 그녀는 런던에 살고 있고, 코마나 세키콜론을 찍거나 빼기도 하면서 글러머러스한 작가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출처: www.sarahbakewell.com)


그녀의 자유로운 삶이 보여주듯 그의 글 역시도 자유롭다.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스타일. 그녀가 보여주고자 한 몽테뉴의 삶은 그야말로 3D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좌측 우측뿐만 아니라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단면으로 잘라서 보여주기도 하고, 하나하나 부분적으로 잘라서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몽테뉴의 삶의 해부학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모자라 세포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DNA까지 분석하는 듯한 느낌. 그랬다. 읽고 나니 어찌나 몽테뉴가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던지. 얼마나 흥분 속에 읽었는지, 사라 베이크웰에게 큰절이라도 하고 싶다.


저서로는 How to Live: a life of Montaigne in one question and twenty attempts at an answer (2010), The English Dane (2005), The Smart (2001)등이 있다.  




1522년 2월 28일에 태어난 몽테뉴는 태어나면서부터 독특한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몽테뉴의 집안은 포도 농장을 갖고 있었고 포도주로 많은 재산을 축적을 한 신진 귀족 세력이었다. 원래 성은 에켐이었으나 몽테뉴란 성을 산 것은 귀족으로의 신분 상승을 위함이었다. 아버지 피에르는 아들에게 독특한 교육을 시켰다. 태어나자 얼마 안 되어 평민의 삶을 직접 경험하게 하기 위해 유모에게 보내져 자라게 하고, 젖을 뗄 즈음 집으로 데려와 그에게 라틴어 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몽테뉴가 완벽한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온 집안 식구들도 어린 몽테뉴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구사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하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엄마와 아빠도 라틴어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가 이뤄지며 젖먹이 었던 몽테뉴가 엄마 품으로부터 떼어져 유모 가족과 함께 자란 몽테뉴가 어찌 엄마의 따뜻한 품내를 맡으며 정상적인 아들 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 몽테뉴가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엄마도 아들을 그리 탐탁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서로 살을 비비며 지낸 기간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그는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존경하고 아버지가 자기에게 행한 교육 방식을 흡족해하고 감사하게 여겼다. 피에르는 보르도 시의 시장을 역임했으며, 일과 사무에는 관심이 없는 몽테뉴였지만 그 역시 나중에 보르도 시의 시장이 되어 굵직한 일들을 해결을 하며 명성을 얻는다.  





성격

몽테뉴의 성격을 보면 참으로 복합적이다. 순진함, 순수함, 투명함, 정직함, 게으름, 태만함, 싫은 것에 대한 무지함 내지는 무관심, 무모함, 용기 있음, 이기적, 충실, 성실, 미루기, 책임감, 등등은 그를 표현하는 키워드이다. 하지만 이것과 반대되는 의미도 그를 표현하는 단어들일 것이다.


여러 가지 그를 표현하는 것들 중 그는 스스로를 느리고 게으르고 건망증이 심하여 기억력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반갑고 기쁘게 환희에 넘치는 고백이었다.


“기억력에 대해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은 없지만,
내게는 기억력을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이 거의 없다.
나만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은
이 세상에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P103)


“여기요~ Here I am~!!”하며 손을 번쩍 들며 외치고 싶었다. “나는 온몸에 금이 가서 사방에서 새어 나간다”라고 한숨을 쉬는 몽테뉴를 떠올리니 안쓰럽기도 하면서 어쩜 그는 스스로를 잘 몰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삶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나 그의 책을 보면 기억력이 없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기억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어쩌면 그의 기록하는 습관이, 그의 일기가 많이 도와줬을 수도 있겠다.  




우정

평생을 두고 그를 행복하게 했고, 그리워하게 했고, 또한 절망적인 슬픔에 빠지게도 했던 라보에시와의 우정. 라보에시와 몽테뉴와의 서로를 향한 존경과 사랑과 우정은 놀라울 정도로 열정적이고 격렬했다는 것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페스트에 걸려 임종하기까지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충실한 친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몽테뉴를 보며 누가 그를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보르도 시장으로 있는 동안 보르도시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렇게 해석된다는 것은 역시 지나친 감정적인 해석일 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 삶의 어느 지점에서 몽테뉴와 라보에시가 나눴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삶이 준 축복이자 선물일 게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내게 강요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P140)


물론 우정도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지만, 남녀 간의 사랑도 이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싶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 있을까.


플라톤의 ‘향연’이 전하고 있는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의 우정을 비유하며 좀 더 잘생긴(?) 자신은 알키비아데스로, 못생긴 라보에시는 소크라테스로 칭하며 좋아라 했던 그들의 우정은 시샘이 날 정도다. 그토록 사랑하는 친구가 내겐 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인지. 굳이 대답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몽테뉴의 위대함

자기 자신에 대한 ‘에세이’라는 글의 형태를 처음 쓴 사람이 몽테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가 살아있는 그 모든 기간은 종교전쟁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낸 몽테뉴. 그러한 가운데 자신을 자기 세계 안의 중심에 놓고 조금의 흔들림 없이 온 집중과 관심을 자신에게 두고 초연히 자기 자신의 생활과 내면의 세계에 대해 글을 써 내려갔다는 사실은 그의 위대함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강한 자아를 지녀야 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으며 지극히 평범한 자신이라고 쓰고 있으니. 종교 전쟁 속에 휘말린 사회 속에서 살며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했음에도 정작 신앙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는 그가 의아스럽기만 하다.


“현대 평론가 데이비드 퀸트의 말대로, 몽테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의 죽음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를 ‘사람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지 말라’는 정도로 해석했을 것이다.” (P198) 까르르르륵~^^;;


이렇듯 그는 소크라테스와 로마의 정치가 카토의 고결한 죽음에 대해서는 글을 썼지만, 십자가 위의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성스러운 구원의 신비에 대하여 냉담했다. 세속적인 도덕률, 즉 자비심과 잔학 행위라는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고 사라 베이크웰은 말하고 있다.  



에세


“사실 ‘에세’의 초판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 그리고 회의주의 덕분이었다. 회의주의는 독립 정신이 강하고 사색적인 독자들의 관심은 물론이고 골수 정통파 성직자들의 관심도 끌었다. (...) 초기에는 정통파도 몽테뉴를 경건한 회의주의 현자, 새로운 피론, 새로운 세네카, 그리고 위안을 주는 동시에 도덕심을 높여주는 책의 저자로 받아들였다.” (P199~200)


이랬던 에세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동물에 대한 견해에서 시작되어 거의 180년 도안이나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기만 하다. 초판부터 시작하여 그 후 여러 판본이 나오기까지 서로에게 편한 대로 분석되고 해석되며 짜깁기와 편집으로 수난을 받은 책 또한 드물 것이다.


“에세는 출판되자마자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고무된 몽테뉴는 1592년 죽을 때까지 12년 동안 제2권과 제3권을 출판하고 꾸준히 내용을 보충하고 수정하여 생전에 제5판까지 출판되었다. 1595년 그의 수양딸 마리 드 구르네가 몽테뉴의 유고를 정리해서 완결판을 출간했는데 18세기 말에 보르도 시청 기록보관소에서 또 다른 유고가 발견되어 ‘보르도 대본’을 토대로 수정판이 다시 출판되었다. 사라 베이크웰은 이러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시대별 독자들에게 ‘에세’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있다. “ (P487)


사라 베이크웰이 말했듯이 에세는 몽테뉴가 죽음으로 끝이난 것이지 에세 자체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아마 몽테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우리는 21세기의 에세를 만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한 가지 질문에 스무 개의 답을 내놓고 있는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정말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고 재미 또한 대단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어느 날 밤은 침대에 누우며 갑자기 뭉클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대기까지 했다. 몽테뉴를 알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감동스러운 것이었을까. 다음으로 읽게 될 수상록에 대한 기대가 크다. 작가의 삶을 알고 난 후 읽게 되는 책은 역시 더 깊은 맛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말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감히’라는 단어와 함께 표현하고 싶은 것은 나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진 많은 성향들을 내 안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슬프게도 부정적인 요소들이.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면에서 담담했다. 그리고 덤덤했다. 당당함과 자신감과는 조금 거리가 먼 느낌이다. 자랑삼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자신의 좋다고 느껴지는 점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점도. 과장이나 그 어떤 꾸밈도 없이. 그래서 그가 너무나도 좋았다.

“뭔가 하겠다는 충동이 일어나면, 그는 정력을 쏟을 수 있었다. “나는 힘든 일도 잘 견뎌낸다.
그러나 나 스스로 그 일에 관여할 때만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열망을 느끼는 만큼만 견뎌낸다.” (P249)

이 얼마나 정직하면서도 천진스러운 고백인지. 그런가 하면 다음의 고백은 배꼽을 잡게 만든다.


“나는 수판이나 펜으로 계산할 줄 모른다. 우리가 쓰고 있는 돈의 종류도 대부분 모르고, 밭에 있는 것이든 헛간에 있는 것이든 아주 확실히 차이가 나는 곡식이 아니면 곡식을 구분할 줄도 모르고, 마당에 심은 양배추와 상추의 차이도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나는 집에서 쓰는 주요 연장의 이름이나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농사의 원리도 모른다. 기계를 조작하는 기술, 교역과 상품 판매, 다양한 과일, 포도주, 식품의 종류와 특징, 새를 길들이는 법, 말이나 개를 치료하는 법도 모른다. 어차피 부끄러운 일을 다 털어놓은 마당에 숨길 것이 뭐 있겠는가. 빵을 만드는 데 이스트를 쓴다는 걸 몰라서 창피를 당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P250)


읽으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닮았을 수가. 물론 모름의 상황은 다소 다르나, 남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당연한 것을 몰라서 창피를 당할 때도 있고, 미나리와 쑥갓을 구분하지 못해서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식탁에 올라오는 요리는 먹지만, 그 요리가 어떤 채소로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것이 수두룩. 그렇다고 알고 싶은 것도 아니어서 살아가는데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여자라는 것만 빼면 그것이 문제가 될 것도 없으나 여자도 그냥 여자가 아니라 결혼한 아내요 엄마라는 역할을 그러한 무지로 어찌해내는지에 대한 의문을 주위 사람들에게 안겨주며 의도치 않은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나 자신. 몽테뉴의 덤덤한 고백에 깊은 공감은 물론, 그에게 급 친근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몽테뉴의 눈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내가 고양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고양이가 나와 놀아주는 것이라는 깨인 안테나를 가질 수 있다면. 나의 일상은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하고, 끝없이 샘솟는 열정으로 호기심 가득한 풍요로운 이야기로 가득할까.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덤덤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삶은 덜 힘들고 덜 열 받고 덜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몽테뉴의 눈을 내가 가질 수 있다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화두였다.



덧붙이며...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책을 읽다가 책 속에 파묻혀 죽고 싶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수잔 베이크웰이 그려놓은 몽테뉴의 삶을 읽으며, 몽테뉴가 그토록 사랑한 역사가 플루타르코스 부분을 읽는 순간 그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와 나를 온통 점령했다. 그를 비롯해 책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고대 작가들과 철학자들, 페트라르카, 에라스무스, 타키투스, 마키아벨리 등등의 이야기는 나를 전율시켰고,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들의 책을 바라보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 곧 그들의 책 속에서 희열을 느끼며 허우적거릴 나를 그리며 얼마나 행복했더랬는지. 이 모두 사라가 내게 안겨준 선물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책을 읽다가 그렇게 책 속에 파묻혀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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