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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May 28. 2020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를 읽고...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


일본의 위대한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강상중 교수의 ‘고민의 힘’을 통해서였다. 강상중 교수는 나쓰메 소세키의 열렬한 팬인듯, 그의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고민에 대한 글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써나갔다. 강상중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꼭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고 그의 책을 꼭 읽어보리라 결심을 했었다.


책 뒷표지에는 나쓰메 소세키를 두고 “일본 근대문학의 형태를 확립한 대문호이자,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라는 칭송이 큰 글씨로 쓰여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소세키 이후 단 한 사람의 소세키도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세누마 시세키라는 분의 글도 올려져있다. 세누마 시세키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도 유명한 작가나 평론가쯤 되리라.


사실 고백을 하자면, 나쓰메 소세키가 그렇게도 나의 관심을 끌은 것은 그의 독특한 이름과 강상중 교수의 그에 대한 지대한 사랑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을 접하고는 얼마나 깔깔대고 웃었는지. 무식이면 용감이라고 그의 이름이 주는 뉴앙스가 넘 웃겼다. ‘나쓰메 소세키’가 내게는 “났씀에 (낳았음에) 소새끼”로 들렸기 때문인데,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두루두루 존경받는 작가의 이름을 두고 내가 이리 경망스런 상상 속에 웃었으니. 만약 작가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끄응~-_-;;


강상중 교수가 어찌나 나쓰메 소세키 작가를 사랑하는지를 알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의 책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구슬꿰듯 설명을 해놓았는지, 마치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의 바꾸는 방법들)>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풀어놓은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유명한 작가의 첫 책을 <한눈팔기>로 시작했다.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한눈팔기>를 읽어라” 고 할정도로 이 <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소설로 그의 연구 입문서로 알려져 있는데, 왜 고전 읽기 리스트에 그 많고 많은 소세키의 책 중에서 이 책이 올려졌는지 알 것 같았다.


<한눈팔기>에 흐르는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회색적이고, 칙칙하다. 서로 같은 상황 속에서 다르게 받아들이며 느끼는 외로움, 고독,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글픔, 슬픔등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터치로 풀어나간다.


가난한 집안에서 많은 자식들 중 막내로 태어나 축복이자 선물로 느껴지기 보다는 짐이나 혹으로 느껴졌던 겐조 (아니 나쓰메 소세키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시마다라는 사람에게 억지 입양된다. 그런데 그가 부인과 이혼함으로 인해 다시 집으로 되물려지는 참으로 기막힌 인생을 살게된다. 그런 기막힌 삶 속에서 그는 참으로 반듯하고 바르게 자라준 겐조가 너무 기특하다. 그렇게 잘 자라주어 일본 최초로 영국 유학까지 갔다오고, 그리고 글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 겐조.


어쩌면 그는 늘 자기는 버려지는 아이라는 생각이 그안에 항상 잠재했던 아닐까. 그래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남들에게 기대지 않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를 해야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기에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사랑을 줄 줄 몰랐던 겐조. 받은 적도 없고 준 적도 없는 사랑, 그랬기에 겐조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몰랐을 뿐 그의 깊은 곳 안에는 여린 마음과 따뜻한 마음이 억눌러져있다. 어쩜 그랬기에 자신을 ‘차가움’ 또는 ‘냉정’이라는 철갑으로 스스로를 두르고 꽁꽁 싸맨 겐조는 더욱 외롭지 않았을까. 스스로에게 더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글 전체에서 그에게는 고독이라는 그림자가 껌딱처럼 달라붙어있는 느낌이었다.


영국에서의 외롭고 가난에 찌들어 배까지 곯았던 힘들었던 경험이, 그렇잖아도 삶의 긍정적이고 밝은 면보다는 어둡게 바라보는 그의 성향을 더욱 짙게 만든건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며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바로 겐조와 아내 오스미의 미묘한 부부관계였다. 서로 사랑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나 독백하는 그들의 삶이 예전의 내 모습과 닮아서 많은 부분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하고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자기만 잘났고 자기만 지식인이어서 하찮은 사람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비겁하게 행동하며 스스로를 용기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겐조. 그런 그의 모습은 답답하고 화가 치밀면서도 공부 밖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외곬수적인 모습에서 내 모습이 느껴져 그 뒷맛 또한 씁쓸했다.


그의 아내 오스미는 남편을 귀찮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며, 온전히 남편에게 순종을 하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자기를 죽이는 것도 아니어서, 자기만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사는 여인으로 느껴졌다.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 안에서 자기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여인네. 조용한듯하나  때때로 올바른 소리를 한번씩 하며 겐조를 성찰하게 한다.


그런 두 부부 관계가 참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지금은 비록 큰 소리가 날지라도 내 안의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만, 예전에는 그러질 못했던 내 모습이 오스미와 참 많이 닮았다고 느껴졌다. 남편과 큰 소리가 날 것 같을때는 침묵을 하며 그저 내 세계에 갇혀있는 것. 그리고 나만의 상상을 펴며 늘 자유를 꿈꾸던 지난 날들. 이제와 생각하면 내가 진작에 내 안의 진솔된 느낌들을 진즉에 남편에게 표현했다면 남편도 나도 고통스런 시간을 덜 보냈을거란 생각을 하곤한다. 서로를 잘 알아가는 데는 '침묵 속의 공감'밖에 없다고 루이제 린저는 말하지만, 침묵 속의 공감이 이뤄지기까지엔 서로를 깊이 잘 알아야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지난 삶이 가르쳐준 가르침이다. 어쨌든, 한눈팔기에 나온 여러 부부상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동양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많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또 참 다른 일본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등장 인물들과의 관계 또한 흥미롭다. 아프면서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누이. 없는 형편에도 남들에게 받는 선물보다 더 좋은 선물을 하는 그녀. 자신이 아파 죽어도 털끝만큼도 관심 없는 남편임에도 남편이 능력있다고 믿으며 나름 당당한 그녀, 내겐 연구대상이었다.


그런가 하면 아내가 아파 죽던지 말던지 눈깜짝 하지 않으며, 바람을 피고 다니면서 아내에게는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능력좋은 히다. 남들이 부탁을 하면서 굽실대는 것이 좋아 무조건 다 받아들여주지만 결국 뒷감당이 안되는 그에게서 왠지 분노와 멸시보다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과거에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아프면서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감히 그만두지 못하는 형.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에서 주인공 겐조의 스토리를 이어가게 하는 시마다. 돈 밖에 모르는 그가 먹을 것은 제대로 안주면서 어린 겐조에게 그렇게 사치에 가까운 옷과 장난감을 사주었던 것이 내게는 참으로 고개 갸우뚱거려지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현재에 집요하게 겐조에게 달라붙는 진드기 같은 노인네. 그런 그를 보며 느끼는 겐조의 느낌과 반응과 대처법이 겐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를 많이 보여주었다.


마치 남의 시선으로 바라보듯 나열해가는 자신과 그 주위 인물들과의 관계가 참 독특했다. 가족이면서도 가족 같지 않은 관계. 마치 남을 대하듯 거리가 있는 듯 하면서도 어려울 때 도와주는 관계. 그렇다고 생색을 내는 관계도 아닌 것이, 적극적이지도 않지만 무관심하게 보내지도 않는 관계. 그들 한명 한명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바라보며 그에 반응하는 심리묘사가 너무나도 생생하여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는 그냥 멍했다. 마치 결말을 알려주지 않는 프랑스 영화를 본 듯한 바로 그런 느낌. 궁금했다. 겐조는 어떤 삶을 이어갔는지. 오스미와의 부부 관계는 조금 좋아졌을지. 그 마음에 안들게 생긴 막내는 한번쯤 안아주었을지. 형과 누이는 건강은 좋아졌을지 시마다는 정말 더 이상 괴롭히러 나타나지 않았을지 등등이.



책 뒤에 연도별로 상세하게 쓰여있는 그의 삶에 대한 사건 연대기를 읽으며, 나쓰메 소세키는 삶의 무거운 짐을 참 많이도 짊어지고 살았구나 싶었다. 자신이 양자로 갔다고 되돌려진 것도 모자라 엄마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와이프는 자살을 시도하고, 그런 와중에도 그는 공부를 계속했고 유학을 다녀왔다. 그는 몸은 약했을지는 몰라도 참 강건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느껴진다.


물론 나중에 그도 신경 쇠약에 우울증을 앓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계속 이어지는 힘겨운 사건들 속에 어쩌면 그는 글을 쓰지 않았으면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한 많은 사건들과 고통들이 결국 그에게 많은 사유를 하게 했고, 인간의 삶의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볼 줄 아는 통찰력을 선물로 안겨주었을 터.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자신을 옥죄어 오는 현실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굳건히 자기의 꿈을 지키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천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가 되었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지닌 강인한 영혼은 어쩌면 그가 가진 유일한 생명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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