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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May 17. 2019

딸 아이와의 기억 속에 함께 하는 백트윗 보이

<참 소중한 당신> 2016년 11월호에 실린 '백트윗 보이'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백스트릿 보이스 음악을 듣다가 문득 애리가 하는 말


“엄마 알어? Backstreet Boys가 다시 모인 거?”

“어~? 정말~?”

“응~!!”

“그럼 인젠 ‘백스트릿 맨‘이겠네~??”

“정말 그러네~ 하하하하하~ ^^“ 우리는 깔깔대고 웃었다.


Backstreet Boys는 큰 딸아이와 나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특별한 그룹이다. 첫째인 애리가 네댓 살쯤 되었을 때다. 순하고 착한 애리가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지고 성격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자연스레 겪는 과정이라 생각했기에 별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 학부모 회의에 갔다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중 애리의 변화가 심상찮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애리와 리예를 집에 데려다주실 때, 할아버지가 리예만 안아주시고 애리는 뒤에서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셨다는 것이다. 애리가 혹시라도 상처가 되지 않았을지. 혹시 어머니는 알고 계셨는지. 모르고 계셨다면 아셔야 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라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만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우리 애리가 할아버지 뒤를 따라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져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애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 살 반 때 브라질에 왔고, 리예는 브라질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는 가운데 태어났기에 리예를 향한 두 분의 사랑은 특별했다. 더욱이, 워낙 정이 좋으셨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자 아버님은 모든 사랑을 리예에게 쏟아부으셨다. 애리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 내가 좀 지혜로운 엄마였더라면 그 변화를 금방 알았을 것이다. 늘 밖에서 일하는 엄마라지만, 집에 있는 시간만큼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좀 더 섬세한 관심을 쏟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유치원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애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버님께도 아주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드렸다. 리예를 안아주실 때 애리도 한 번 안아주시고, 소외감 느끼지 않게 애리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보여주시기를.


그날 밤, 나는 애리의 마음을 보듬어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이미 마음이 닫힌 애리로부터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혼자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아빠가 애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애리가 태어날 때 심장 박동이 멈춰 갑자기 제왕절개를 해야 했던 이야기, 애리를 낳았을 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애리가 너무 작아서 아빠가 안을 때 얼마나 겁내 했는지 등등, 독백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눈치를 살피며 애리에게 무엇이 가장 속상하냐고 물으니 눈물을 글썽대며 하는 이야기..


“엄마.. 내 건 하나두 없어.. 내 장난감두 모두 리예 줘야 하고, 내 건 아무것도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엄마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울었다. 내가 엄마가 맞는지. 어린 딸이 이렇게 상처 속에 아파하고 있는데 자기 힘든 것만 생각하고 있었으니. 한참을 울고 나더니 마음이 좀 풀렸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뜸 애리가 묻는다.


“엄마~ 백트윗 보이가 좋아? 산디 & 주니어가 좋아?”


샌디 & 주니어는 브라질의 유명한 남매 가수라 알지만, 백트윗보이는 누군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부르잖아” 가만 생각해보니 ‘백스트릿 보이스’를 말하는 거였다. 아마도 어린 애리에게는 ‘백트윗보이’로 들렸던 모양이다. 백트윗 보이가 좋다는 나의 말에 자기도 그렇다며 활짝 웃는 애리.


“엄마가 애리한테 많이 많이 미안해…”

“아니야.. 엄마…”

“엄마가 우리 애리 너무너무 사랑해…”

“나두...”


피곤했는지, 아니면 그동안의 쌓였던 서러움이 녹아내렸는지 그날 애리는 내 품에 포옥 안겨 쌕쌕거리며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 언니 장난감까지 당연하게 자기 차지이던 리예는 언니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애리는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웃음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우리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백스트릿 보이스의 음악을 들을 때면, 때때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코끝이 시려지곤 한다. 나의 작은 바람은 애리와 리예가 기쁠 때나 힘겨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엄마였으면 좋겠다. 행복해서 눈물이 날 때, 삶에 지쳐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는 그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엄마,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이나 하고 있는지. 행동은 안 따라주고 입으로만 그럴싸하게 읊어대며 사회적 가면을 잔뜩 쓰고 있는 모양새는 아닌지. 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겠다.




그렇게 애기였던 애리는 인제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꿈을 향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엄마 아빠 기대를 그대로 부응하며 반듯하게 잘 자라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조금 있으면 또다시 유학 길에 오르는 애리. 대학 때 독일로 떠나보낼 때는 신이 났었는데, 그때와는 달리 이상하게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엄마 아빠를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일까. 그래,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는 건데 나 답지 않게 청승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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