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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May 05. 2019

최명희 선생님, 시, 그리고 샹송

<참 소중한 당신> 2016년 9월호에 실린 글

<참 소중한 당신> 2016년 10월호에 실린 글


유튜브에서 Nina Simone의 음악을 검색하던 중 에디뜨 삐아프의 Ne Me Quitte Pas (나를 떠나지 말아요)가 눈에 들어왔다. ‘에디뜨 삐아프...‘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혼불‘ 작가이신 최명희 선생님이 나의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첫 수업부터 얼마나 강렬하게 다가오셨는지. 그 분과의 영화 같았던 수업은 지금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제 가련다. 이니스프리의 호도로....”


첫 국어 수업 시간, 당신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낭랑한 목소리로 교실 창가에 서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암송하시던 선생님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에 잠기신 듯 시를 읊으시고는 예이츠의 삶과 시에 대한 설명과 함께 친구들과 떠난 배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점점 가까워져오는 섬을 바라보며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떠올리셨는데, 바로 그 순간 친구의 남편 분께서 그 시를 읊으셔서 깜짝 놀라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친구들의 우정과 낭만 가득했던 여행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빠울로 꼬엘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레프‘가 이뤄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는 대화도 참 문학적이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자그마한 키에 찰랑대는 짧은 단발머리. 너무 맑아서 투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늘 입가에 피어있는 따뜻한 미소. 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실 때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빛나시던 선생님. 소녀의 감성을 지니신 선생님의 수업은 항상 시와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는 수업 전 쉬는 시간에 출석 번호 순서별로 한 명씩 뽑아 온 시를 칠판에 적어 놓았고, 그 시를 각자의 시집에 옮겨 적었다. 선생님께서는 시를 낭송하신 다음 우리에게 큰 소리로 읽게 하셨고, 시의 주제와 소재, 그리고 시인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다음에야 본 수업으로 들어가셨다. 그렇게 우리의 시집은 우리가 좋아하는 시들로 하나하나 채워져 갔다.


또한, 매 학기마다 가장 예쁘고 정성스럽게 꾸며진 시집을 뽑아 예쁜 일기장을 선물로 주시곤 했다. 시집은 각자의 개성대로 꾸며졌는데, 어떤 친구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시체를 만들어 부러움을 자아내는 멋을 한껏 뽐내기도 했다. 이렇게 선생님으로 부터 배운 시집 꾸미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시집’의 개념을 넘어 시 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들을 옮겨 적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삽화를 베껴 그려 넣으며 때로는 시인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기억하고 싶은 에세이 한 토막을 옮겨놓는 소중한 노트가 되었다. 그랬다.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국어시간은.


그나마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시들은 그 시절 최명희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읊어 대서 식상하기마저 했던 "시몬, 너는 아느냐.."구르몽의 ‘낙엽’부터 시작하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장콕도의 ‘도마뱀’, 에드가 알란 포우의 ‘애너벨 리‘, 풋사랑의 기억 속에 함께 했던 이수익의 ‘우울한 샹송‘, 유치환의 ’사랑’등등. 특히,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삶과 루 살로메와의 사랑 이야기는 얼마나 설레게 했는지. 그 당시 내가 참 좋아했던 시는 아뽈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였는데 온전히 후렴 부분 때문이었다.


종은 울고

날은 저물어

세월은 가는데

나는 이곳에 있네




선생님은 시와 시인뿐만 아니라 샹송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전설적인 샹송가수 에디뜨 삐아프와 줄리엣 그레꼬를 알게 된 것도 선생님을 통해서였다. 에디뜨 삐아프와 이브 몽땅의 사랑 이야기, 샹송 가수가 까만 옷을 입게 된 유래가 줄리엣 그레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과 샹송과 낭만 가득한 몽마르뜨 언덕이란 곳이 파리에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다가 종종 코끝이 빨개지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면 나는 마치 선생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듯 눈물이 그렁대곤 했다.


한번은 미술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내 책받침이 도탑고 단단하여 좋다며 빌려가 작업을 하시다가 부러뜨리셨다. 무척 아끼는 물건이었기에 얼마나 속상했는지 수업이 끝난 후 애써 참았던 눈물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마침 복도를 지나시던 최명희 선생님께서 울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교정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왜 우는지 좀체 입을 열지 않는 나를 인내심으로 기다려 주시며 이야기를 들어주시고는 도닥여주셨다. 선생님은 아셨던 게다. 내가 속상했던 이유는 단순히 고작 책받침이 부러져서가 아니라 의미가 담겨있는 사랑하는 것에 대한 상실에서 오는 슬픔이었음을 말이다. 이해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그때 알았다. 선생님의 포근한 눈빛과 귀 기울임으로 슬픔은 녹아내렸고, 섬세하게 마음을 써주시는 선생님의 따스함에 내 얼굴엔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도 커서 선생님처럼 마음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이 추워질 때마다 시린 가슴 데워주는 따뜻한 난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작은 아픔에도 귀기울여주고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 그래서 삶에 지쳐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떠올리며 포근한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내 기억 속의 선생님처럼.....


언젠가 한국에 나가게 되면 꼭 최명희 문학관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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