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들은 무엇을 먹고 사나
입사 3년 만에 멀미가 났다.
KTX때도 기차 시간만 하루 최장 6시간이었고
DMZ트레인만 탈 때도 최장 5시간이었는데
이젠 하루 10시간, 14시간씩 승무를 하다보니
입맛이 떨어지다 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갔다.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다 보니
잠을 4시간밖에 못 자니 더 심해진다.
엄마는 잘 챙겨 먹으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기차 안에서 삼시세끼를 먹다보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고객들도 내 지인들도
기차 안에서 승무원들은 끼니를 어떻게 때우는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대해
써보려한다.
S트레인은 아침과 저녁은 기차에서,
점심은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해결한다.
아침식사는 보통 기차로 이동할때 서울역 혹은 용산역에서 미리 사서 가는데, 편의점 도시락 혹은 맥도날드 맥모닝, 던킨, 베이커리 등 날마다 각자 먹고싶은 것으로 초이스하여 알아서 구매한다. 이때 저녁에 먹을 것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보니 저녁은 대충 때우게 된다. 저녁은 숙소 근처 컵밥을 사먹기도 하는데 나는 한 번 먹어봤다. 저녁을 챙겨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역시 S트레인의 메인은 점심이다.
여수엑스포 정문 쪽에 숙소가 있어 정문 앞 식당을 많이 이용한다.
분식집 두 곳, 게장백반집, 돈까스집, 칼국수집, 중국집.. 이 식당들 중 한곳을 간다.
분식집엔 각종 찌개와 덮밥이 있어 결정장애가 올 때 많이 이용한다.
무엇보다 게장백반집이 가장 인기가 높다.
1그룹에서 지원 나온 인원들이 S트레인을 타면
자동적으로 가게 되는 집이다.
여수하면 게장 아닌가. 어느 집을 가도 평타다.
장어탕도 뒤지지 않는다. 몸보신을 위한다면 꼭 먹어보길.
깔끔하게 나오는 돈까스 정식과 한그릇 가득 나오는 국물이 기가 막힌 바지락 칼국수도 승무원들이 좋아하는 메뉴.
역시 여수는 맛의 고장이다.
우리 그룹 멤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기차는
단연 A트레인이다.
4시간을 달려 아우라지역까지 가서 50분 뒤 다시 한시간을 달려 민둥산역으로 가 30분 서있다 다시 한시간을 달려 아우라지역으로 돌아와 30분 뒤 다시 4시간을 달려 청량리로 돌아오는,
지옥의 레이스.
입맛이 돌아올라 치면 다시 열차가 출발하는,
끝없는 우리의 승무.
하지만 기력을 내기 위해 뭐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끝까지 살아서 돌아간다.
A트레인도 아침과 저녁은 S트레인과 비슷하게 해결하나 청량리역에는 떡볶이와 어묵, 토스트를 파는 곳이 있는데 따끈하게 먹을 수 있어 가끔 이용한다.
점심은 보통 과일이나 간단히 먹을거리들을 싸오는데 사실 입맛이 없어 그마저도 저녁에 먹기도 한다. 식당을 이용하는 경우는 두가지. 중국집 배달을 시키면 나전역 벤치에 사람은 없고 음식이 박스에 담겨 덩그러니 놓여있다. 계산은 계좌이체. 처음엔 굉장한 문화충격이었으나 지금은 익숙하다. 아우라지역에 막국수집이 있는데 나는 참기름인지 들기름인지가 조금 많은 듯하다. 허나 진짜 깔끔 담백한 막국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경의선 DMZ 트레인은 점심만 해결하면 된다.
아침은 집에서, 저녁은 집이나 약속으로 해결하니 한결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깜빡하고 도시락이든 먹을거리를 사오지 않으면 도라산역 매점에 있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민통선 안이라 식당이 한 개도 없다. 도라산 출입사무소 쪽 구내식당이 하나 있는데 멀기도 하고 별 맛이 없다. 딱 한번 이용하고 가지 않았다.
원래 DMZ트레인 멤버들은 도시락을 싸 왔는데
출퇴근시간이 꽤 합리적이라 가능했다.
9시까지 출무해서 6시면 퇴근했으니까.
난 그때의 습관이 아직 있어 왠만해선 도시락을 싸 오는 편이다.
쉬는 날 몰아서 미리 냉장고에 싸놓고 보관하던지
아니면 A트레인이나 D트레인일때만 싸온다던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우린 일하기 위해 먹는 듯한 느낌이 든다.
멀미와 사투를 벌이며 입으로 먹을 것을 겨우 밀어 넣고 검표를 하고 판매를 하고 방송을 하고 이벤트를 한다.
만약 기차 안에서 뭔가를 입에 넣고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면 민원대신 위로를 해주길..
살아 돌아가기 위해 충전을 하고 있는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