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는 카지노가 있었다_초심자의 운
해외공연 초반에 우리는 KLM(네델란드항공KLM Royal Dutch Airlines)을 자주 이용했다.
당시만 해도, 단체예약에 주어지는 혜택이 많았다. 15명이상의 그룹이 예약하면 FOC(Free of charge/1인 무료 티켓)가 제공되었고, 10명이상일 경우 CG50(인솔자 50%할인)이 제공되었다.
직항이 가장 편하지만, 경유하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트랜짓Transit(환승)까지 여유가 있다면 경유지의 시내투어를 다녀올 수도 있고, 공항을 구경하며 해당 도시의 기념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KLM을 이용하면, 목적지가 런던이든 파리든 마드리드든 암스텔담 스키폴공항Schipol Airport에서 트랜짓을 하게 된다.
처음 한두번은 암스텔담 시내에 나갔다 오기도 했지만 점차 공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봄, 나는 스키폴공항에서 도시이름이 적힌 스노우볼을 하나 사고는 별 생각없이 공항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 공항에 카지노가 있네?’
신기한 마음에 카지노에 들어가려 하자,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딜러가 있는 테이블이 4~5개 정도 보였고 나머지 공간은 슬롯머신이 차지하고 있었다.
라스베가스나 마카오처럼 화려한 대규모의 카지노는 아니었지만, 쾌적한 공항 라운지처럼 고급스러운 바와 실내 인테리어가 편안해 보였다.
사람도 많지 않은데다 샴페인, 와인, 위스키 등 원하는 음료도 제공되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마치 아지트를 발견한 것처럼 즐거웠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10명 남짓으로 한산했다.
두리번거리던 나의 눈이 플레이어가 없는 포커 테이블의 딜러와 마주쳤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시선을 옮겼다. 도성, 도신, 도협 시리즈와 007 시리즈 등 수많은 갬블 영화의 메인은 포커 게임이었다. 레이스Race를 하고 블러핑Bluffing을 하고… 너무 전문적이고 진지한 이 게임을 카지노에서 전문가(?)와 앉아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걸음을 옮겨 비교적 룰이 간단한 블랙잭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마주한 금발의 딜러 아줌마는 ‘카지노는 처음이지?’하는 눈빛으로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플레이 방법을 알아요? Do you know how to play?”
초등학교때 다니던 피아노학원에서 처음 카드놀이를 배웠다.
사법고시를 준비한다는 원장선생님의 남편이 가끔 학원에 놀러 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카드놀이를 가르쳤다. 포커, 훌라, 도둑잡기, 원카드, 블랙잭 등 카드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놀이를 배웠고, 어릴 때 배운 건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 것 같다.
블랙잭의 룰은 간단하다.
플레이어player든 딜러dealer든 2장이상의 카드의 합이 숫자 21(블랙잭)이거나, 21에 더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카드를 받은 후 숫자의 합을 계산하고, 추가 카드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면 된다. 이 경우에도 말은 필요 없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번 두드리면 카드를 받겠다는 의미이고, 오른손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윽 한번 저으면 받지 않겠다는 거절의 의미가 된다.
카지노의 꽃이라는 룰렛의 룰은 생각보다 더 간단했다.
당구대 같은 테이블 위에 0부터 36번까지의 번호가 적혀 있고, 플레이어들은 원하는 번호 또는 다양한 베팅 옵션에 자신의 칩을 올려놓는다. 룰렛판Wheel이 돌기 시작하면, 딜러는 구슬Ball을 반대방향으로 돌린다. 구슬이 하나의 번호 포켓에 들어가고, 딜러가 위닝넘버Winning Number를 말하면, 순간적으로 희비가 갈린다.
위닝넘버에 베팅한 사람들은 베팅한 칩의 수와 방식에 따른 배당을 받는다.
정확히 한 번호를 맞춘 경우 36배, 두개의 번호에 걸쳐서 베팅한 경우 18배, 4개의 번호에 걸쳐서 베팅한 경우 9배 등등. 이외에도 빨간색 또는 검은색, 짝수 또는 홀수, 큰수 또는 작은 수 등 50%확률로 베팅하거나, 가로나 세로의 숫자들 모음 등의 1/3의 확률로 베팅할 수도 있다.
이 단순한 게임에 플레이어들은 각자 ‘자신만의 규칙과 징크스,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덧붙여 가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모든 번호에 칩을 올려놓을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면 마음이 편했다. 그 후 보드판에 나와 있는 지난 번호들과 그 주변의 숫자들을 살피며 딜러의 특정 패턴을 파악했다.
게임이 시작되면, 다른 사람이 베팅을 하는 동안에는 천천히 칩을 놓다가, 딜러의 손에서 구슬이 떠나는 순간부터 정해 놓은 번호에 베팅을 이어갔다.
내가 ‘만든’ 규칙은 넌센스Non-sense다.
어떤 게임을 하든 나는 스스로의 논리를 만든다. 이 논리는 그저 나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룰렛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번호에나 칩을 올려놓고 그 번호가 맞기를 기다리는 건 재미가 없었다. 로또 용지에 번호를 적을 때에도 한 번호 한 번호에 의미를 부여하듯, 게임을 할 때에도 남이 모르는 뭔가를 나만 아는 것처럼, 대단한 원칙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단순한 게임안에 나만의 착각으로 만든 의미를 부여해 나갔다.
초심자의 행운은 나에게 한시간의 재미와 좋아하는 향수를 살 정도의 판돈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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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02.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는 카지노가 있었다
#02.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는 카지노가 있었다 _
#02.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는 카지노가 있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