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척, 나
어릴적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은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 시절에도 우리엄마에게 친하게 지내자는 연락이 왔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고등학교를 선지원 후시험으로 들어가는 비평준화 지역이었던터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기억에 체력장 20점을 제외한 180점 만점 기준으로 170점이었고 내가 다니던 학원 홍보지에 고득점 학생 중 한명으로 이름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된 이후 나는 공부를 하긴 하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기억으로 반에서 4등 했던 것이 최고 높은 성적이었던 것 같다. 고 2, 고3 때 담임선생님이 같은 분이셨는데 선생님이 봐도 쟤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왜 성적이 안오를까 생각이 들었는지 늘 나에게 아쉬운 표정을 보이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공부 잘할 것 같은 학생이었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모범적인 수업 태도, 참고서보다 더 참고서 같이 필기된 교과서... 겉으로 보여지는 이 정도면 1,2등 이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진짜 실력이 쌓여지지 않았던 거다. 나는 공부하는 척만 한 것이다.
주 2회 재택근무 덕분에 집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학교, 학원에서 주는 숙제를 했고, 나는 아이의 학습 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온라인 수업도 큰 흐트러짐 없이 잘하는 편이고, 궁금한 것은 질문도 잘한다. 보통 1시간40~50분 진행되는 수업을 끝까지 잘 해낸다. 수업 태도는 다행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를 유심히 보니 수업 중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 것을 '답'이라고 정해진 칸을 채우는 것이 우선인 것 같았다. 선생님 설명을 듣고 본인이 이해하고 쓰는게 아니라 교재의 '답' 칸을 채우는 것이 목적인 것이었다. 그동안은 퇴근해서 아이가 한 결과물만 보다보니 잘했다 칭찬을 했는데 과정은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칸에 채우는 것. 글자 연습이었던 것이다.
두렵다... 나와 같을까봐. 아이가 보이는 똑똑이 일까봐...
보여지는 모습과 실력이 같지 않을 때 주변의 시선, 내 스스로에 대한 불만, 점점 떳떳하게 되지 못했던, 그리고 어느 순간 기대했던 그룹에서 제외되는 그 시간들이 아이에게 있을까봐 두렵다.
대학원 과정을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왜 내가 성적이 오르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공부하면서 내용을 되뇌이며 고민해 본적이 없다. 그냥 들은 것을 100번 쓰며 외웠을 뿐이다. 그래서 점수 주려고 내는 문제는 다 맞았다. 하지만 변별력을 위해 만든 문제는 다 틀렸다. 대학원 과정은 2년 동안 하나의 주제를 놓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케이스를 찾아내고 해결 방법을 고민한다. 이 과정이 나는 너무 힘들고 잘 안됐다. 그렇게 석사 1년을 보내면서 2호선 새벽 지하철에서 누가 보는 것도 상관없이 펑펑 울었다. 2년을 마치고 졸업은 했지만 나는 내가 가진 한계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게 늘 나에겐 극복하고 싶기도 하고 감추고 싶기도 한 부분이 되었다.
아이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되니 두렵다.
제발 닮지 말았으면 했던 모습을 보니 화는 나지만 아이에게 화를 낼 수가 없다.
마음을 진정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답 칸을 채우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문제에서 무엇을 찾으라고 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제시한 근거를 놓고 생각을 해서 풀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내가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어떻게 해결을 해나가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아이에게 한 문제를 놓고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러한 고민이 쌓여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스스로 잡고 그렇게 진행하면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희열을 느끼기도 하는 단계가 공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해야 니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