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인지 극복인지
나는 이제 15년가 넘어가는 직장인이다. 연봉은 공개할 수는 없지만 석사 마치고 대기업 들어가 7년 넘게 일을 했고, 현재 회사에서 곧 10주년이 되니, 총 17년 노력한 대가로 보기에 그럭저럭 내 기준에 나빠 보이지 않는 연봉이다. (내 기준이 낮을 수 있다.)
첫 회사에서 퇴사를 한다고 말을 하니 인사팀장이 나에게 프렌차이즈 선수처럼 나를 키워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조금 찡 했다. 내가 공채로 입사할 때 30명 신입 중에 여자 3명. 이중 1명은 다른 회사로 가고 2명이 입사를 했다. 선배님들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따라하려고 했던 부분이 당시 꽤 괜찮은 신입으로 보여 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다 선배들 덕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 만났던 선배들이 내가 그저 따라만 해도 될 만큼의 좋은 롤 모델들이었다.
첫 회사를 떠나기 바로 전, 7년차 때 결혼과 임신을 했고, 지금 회사로 이직을 했다. 집과 가깝다는 것, 어린이 집이 있다는 것, 먼저 나를 찾아줬다는 것, 임신해도 오라고 했던 것에 확 끌려서 이직을 결심했고 그 뒤로 10년이 흘렀다.
나는 아주 최고 인재는 아니지만 평타는 치는, 버리기에는 아까운, 평가를 하는 기준 선이 있다면 기준선 보다 약간 위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맡으면 결론은 만들어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이도 먹고 연차도 쌓였지만 나름 선방하며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나름 잘 지내 오다 가도 어느 순간, 나의 존재를 부정 당할 때, 또는 나의 성과가 누군가에 의해 묻힐 때, 내가 하는 일이 내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옮겨질 때, 이러한 모든 상황이 나 모르게 진행되었을 때… 환장하겠다. 위염이 돋고 역류성 식도염이 돋는다.
이러한 쓰라림이 있을 때 퇴사, 이직의 생각이 많이 든다. 그리고 채용 사이트를 쫙 돌면서 마땅한 곳을 찾아본다. 눈에 띄는 곳은 현재 회사보다는 조금 덜 네임밸류가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래 이런 곳에서 내가 가서 한번 같이 키워보자라. 연봉이 좀 낮아져도 성취감과 만족감이 클꺼야라고 생각을 한다. 참 신기한 게 이런 마음을 먹으면 마음이 확 환기가 된다.
그러다가 다시 이력서를 써보려고 하면 답답함이 생긴다. 여기라고 다를까, 지금 집에서 먼데, 내가 될까 등등 이면의 두려움이 하나씩 올라온다. 여기에 첫 핵폭탄은 엄마 전화다. 엄마가 전화해서 어제 니가 보내준 배송 받았고 너무 잘먹었다고 하는 순간 아휴…
‘지금 내가 어딜 가서 뭘 더하겠어. 여기 그냥 다녀. 그래도 여기는 내가 맛있는거 있으면 엄마한테 맘 껏 보낼 수는 있잖아.’
두 번째 핵폭탄은 아들이다. 이런 날 따라 아이랑 티비 볼 때 회사 제품 광고가 나온다. 아이가 보더니 “엄마 나는 엄마랑 아빠가 다니는 회사가 티비에 나올 때 기분이 좋아” 그런다. 아휴….
‘그래 아이가 자랑스럽게 생각을 해주는 곳이지. 이 만한 곳도 없지.’
아들을 재우면서 옆에 나란히 누워서 말한다.
“너도 숙제 다하고 문제집 다 풀고 학원가면 학원이 재밌고 학원 계속 다니고 싶지. 엄마도 엄마가 한 일 보고하는 미팅하고 미팅이 잘 끝나고 퇴근을 하면 엄마 회사가 너무 좋아. 그런데 엄마 일이 잘 안되고, 회의 하다가 속상하고 하면 엄마는 이 회사가 다니기 싫어져.“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 그건 원래 그런거야. 당연한 거지” 라고 말한다.
당연한거지...
나는 또 다시 그 자리, 이 자리에 있다. 약간의 끼워 맞추기 지만 나를 알아주는 새싹 같은 회사에 가서 내가 아직 터트리지 못한 열정을 쏟아 보겠다던 생각은 또 다시 접어 놓는다. 그래 가진 것, 현재에 감사하자로 결론을 내린다. 이러면서 또 나는 그 속쓰림을 잊고 묻는다. 이게 타협인지 극복인지 잘 모르겠다. (타협 같다.)
우선은 이렇게 또... 한 번의 질풍 노도를 지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