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앙필 리뷰

난다 긴다 하는 아재들, 제대로 사고 친 <서울의 봄>

개봉 한 달여 만에 천만 관객 모은 <서울의 봄> 비결은?

by 앙필

지난 11월 22일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이 개봉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한국 영화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개봉 2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에 이어, 개봉 33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달성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역대 개봉작 중 31번째 그리고 국내 작품 중에선 22번째 1000만 영화라고 한다. '정치적 역사를 다룬 영화=지루함'이라는 편견을 깨고, 이같은 1000만이라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 출처 - 플러스엠 엔터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현대사를 소재로 한 스토리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사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무려 18년간의 독재 체제를 이어가고 있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겨우 되찾게 된 서울의 봄은 짧았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소속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시금 군사 반란을 일으켰던 그 9시간의 과정을 디테일하게 다룬다.


사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직접 경험하지 못했고, 어릴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서만 배워왔던 사건들이기 때문에 신군부 세력 반란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서울의 봄>은 그 시절 12.12 사태가 어떻게 해서 발생했고, 그 배경엔 어떤 인물들이 얽혀 있는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렵게 되찾은 서울의 봄을 또다시 빼앗기게 된 것인지 빈틈없이 보여준다. 9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 전개로 현대사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몰입하며 볼 수 있다.


물론 곳곳에 많은 허구 장치가 더해졌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그리고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현대사의 오점들을 다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에게 영화가 꼭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울의 봄>은 현대사를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것이야말로 희극이었다!" 또는 "비극이었다!"라는 것을 강요하며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점 역시 빠르게 관객 수를 견인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선과 악을 나눠 이분법적인 사고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해당 사건을 드라이하게 그려냄으로써, 보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사진 출처 - 플러스엠 엔터

주조연 불문 아저씨 배우들의 명 호연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등을 비롯한 정만식, 이준혁, 정동환, 김의성, 안내상, 염동헌, 최병모, 김성오, 이재윤, 박훈, 정해인 등 탄탄한 주조연들의 눈부신 활약이다. 먼저 신군부 세력의 주축이자 12. 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을 맡은 황정민의 열연은 당연 압도적이다. 황정민은 놀라운 싱크로율과 특유의 흡인력 있는 연기로 작품의 몰입도를 더한다. 특히 전두광(황정민 분)이 그토록 원하던 반란에 성공한 후 화장실에서 혼자 미치광이처럼 웃는 장면은 탐욕으로 뭉쳐진 인간의 잔혹한 환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황정민이 가지고 있는 대체불가 깊은 연기 구력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진 출처- 플러스엠 엔터

정우성의 활약 역시 돋보인다. 정우성은 전두광에 맞서는 인물이자, 12.12 반란에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수도 경비 사령관 이태신 역을 맡았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극 중 이태신(정우성 분)이 신군부세력의 군사 반란을 막는 데 결국 실패하고, 대립하고 있던 전두광이 있는 쪽을 향해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는 장면이다. 빼곡하게 채워진 장애물들을 건너면서 넘어져도 기어이 전두광에게 다가갈 때, 끝내 반란을 막지 못했다는 패배감과 허탈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려는 이태신의 처절한 정의감이 교차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 밖에 <서울의 봄>을 보다 보면 '어? 저 배우도 나오네!'라는 생각이 내내 들 정도로 우리나라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가 있는 배역만 하더라도 60여 명에 달한다. 영화 스토리 특성상 남자 아저씨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데, 저마다 각자 맡은 캐릭터에 체화된 열연을 펼친다. 쉽게 볼 수 없는 아저씨 배우들의 명 호연은 주요 관전포인트다.


사진 출처 - 플러스엠 엔터


김성수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숨 막히는 연출


<서울의 봄>은 12.12 사태가 일어난 9시간 다뤘지만, 러닝 타임은 무려 141분이다. 절대 짧지 않은 긴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객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은 특유의 디테일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는 연결 구성, 실화의 재구성,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갈등과 대립을 적극 활용해 141분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지도록 전개했다. 실제로 그간 김성수 감독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서울의 봄> 관람 후 김 감독의 역작이라고 호평을 이어갈 정도로, 그간 쌓아온 연륜과 탄탄한 연출력을 오롯이 녹아낸 작품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이 영화를 보면 유독 인물들의 클로즈업 장면이 자주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대립하는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 변화를 나타내는 시선의 깊이, 표정 등을 보다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도인상적이었다. 이런 연출은 인물 간의 관계성에 대해 설득을 더 하는 장치로도 톡톡히 활약하고 있다.


아직 <서울의 봄>을 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얼른 빨리 가서 보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을 만큼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시간이 아깝지 않은 한국 영화였다.


"역사를 통해 배운다."라는 말이 있듯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사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되새기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혼란스럽고 위태로움의 경계에 맞닿아 있는 시점일수록 우리는 이같은 영화를 통해, 또다시 봄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삶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보호해야 하는지 다시금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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