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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Mar 19. 2022

마라샹궈

(1)

재요에게.


첫 글쓰기 소재를 마라샹궈로 정하다니, 정말 너 답고 우리 다운 소재라고 생각했어.

샹궈를 자주 해 먹기도 하고, 언제나 약간 그리운, 그래서 뭐 먹을까 얘기할 때면 항상 후보에 오르는 음식이니까.

해 먹기 어렵지 않고, 직접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어서 좋아하는 ‘우리’의 샹궈에 대해서는 이미 둘 다 잘 알고 있을 테니, 이 글에서는 조금 더 ‘나’의 마라샹궈에 대해 이야기해볼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학교 앞에서 처음 마라를 먹었을 거야. 아마 파이*와 함께였고, 탕으로 먹었어. 자극적인 맛, 낯선 향신료의 맛을 워낙 좋아하고 잘 먹는 편인 데다 정말 애정하는 목이버섯을 비롯해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만큼 넣어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매력적이었어. 언제나 이따만큼 쌓아서 먹다 보니 파이는 1인용, 나는 2인용 그릇에 마라탕이 나온 적도 많고 허허.


그렇게 한동안 마라탕만 먹은 건 이미 너무 맛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샹궈는 보통 2인 이상의 단위로 주문을 받는다는 조건이 있다 보니 각자 원하는 대로 즐기는 1인 1마라탕이 편했던 것 같아. 그러다 언젠가 누군가 마라샹궈가 진짜 맛있다는 걸 알려줬을 테고 그렇게 또 다른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재료를 고르는 건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은 일이었어. 이미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뿐더러

둘 다 엄청 좋아하거나 한 명은 덜 좋아하는 재료는 그에 맞게 양을 조절하면 되더라고.

각자의 그릇에 담을 땐 몰랐던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의외로 재미있고 두 사람의 선호가 뒤섞여 하나의 음식으로 나왔을 때의 모습이 꽤나 조화롭게 느껴졌어.

처음 먹어본 재료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을 때의 기분 좋은 자극도 있었고,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음식을 책임지고 있다는 묘한 홀가분함도 있었나 봐.


너랑도 처음에는 마라탕을 먹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부턴가 자연스럽게 샹궈를 먹고 있더라.

너가 나보다 훨씬 당면과 푸주를 좋아한다는 점 외에 특별히 기억나는 우리의 재료 호불호가 없는데,

웬만한 재료는 둘 다 좋아해서일 수도,

서로의 취향에 익숙해져서일 수도,

습관처럼 서로를 배려하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언제나 그리워하는 마라샹궈처럼

우리의 같기도 다르기도 한 취향과 익숙함과 배려도 언제까지나 그리워하기로 해.


2022.03.19.

기요.

+ 너에게 주는 다음 글 소재는 '겨울'이야.


*파이: 대학교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나 흥겨운 시간을 함께 보낸 나의 짱친으로, 파이라는 애칭도 내가 붙여줬다. 2018년 봄, 재요와 나의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했다가 무기한 연기되었고 그해 9월, 파이와 함께 간 창업지원캠프에서 우연히 재요를 만났다. 2020년 가을, 헤어졌던 재요와 다시 만났을 때도 나는 파이와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파이는 음 뭐랄까... 우리의 은인 격. 그래서인지 재요는 매우 파이랑 놀고 싶어 하는 것에 비해 파이는 우리에게 정말 관심이 없다. 나에게만 관심 있는 역시 내 짱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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