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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Mar 27. 2022

겨울

(2)

기요에게.


첫 글을 쓴다니 많이 설레고, 적당히 귀찮고, 조금은 아득하네. 살면서 편지를 기념일 아니면 잘 안 써본 나로서는, 게다가 sns에 홀로 풀어놓는 글을 주로 쓰던 나로서는 꽤나 챌린지 한 일인 것 같아. 뭐, 처음에는 문장을 평소처럼 쓰고, 나중에 다 구어체로 바꾸면 되겠다 싶기도 했는데, 느낌이 다르니까. 그렇게 내 글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이 부쩍 지났고, 어느새 이번 주 글을 발행 마감하기로 한순간이 다가오고 있네. 이 글을 쓰면 다시 새로운 너의 글이 시작되겠지. 마치 겨울이 지나면 다시금 봄이 찾아오듯이 :)


겨울은 그간 나에게 꽤나 잔인한 계절이었던 것 같아. 문득 겨울과 여름을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는데, 여름은 대체로 즐거운 장면들이라면 겨울은 어둡고, 외롭고, 슬프고, 참아내던 장면들이 떠오르는 것 같아. 해가 오래 안 떠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나에게 아직 겨울의 아픔들이 다 잊혀지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겨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2017년 겨울이야. 긴 여행을 끝내고, 이태원 옆 보광동에서 터전을 잡고, 휴학생 신분으로 부모님에게서 금전적 독립하겠다는 결심을 했던 그 시기. 왜 그렇게 부모님에게서 '완전한 독립'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 그냥, 용돈 받는 게 싫고, 부모님이 나 때문에 계속 일하는 게 싫고(설령 부모님의 노동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학교에 복학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나에게 자체적으로 페널티를 부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독립이라는 첫 발을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 시작하며 지금의 내 모습이 형체를 마련하기 시작했나 봐.


그땐, 그러니까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보겠다고 결심했던 그 시기에는 참 많은 일을 했어. 동시에 일을 서너 개씩 했으니까. 물론 단기 알바도 있었고, 프리랜서 일도 있었고, 정기적인 일도 있었지만 그냥 닥치는 대로 다 했던 것 같아. 나에게는 아무런 베이스가 없으니까. 먹는 것도 가장 저렴한 걸 찾아다니고, 쓰는 것도 쓸데없는 곳에서 아꼈어. 그래서 집에 의자가 부서졌는데 그냥 캠핑의자에서 편집하다가 허리가 완전 아작이 나서 일주일 넘게 입원하기도 했고, 몸이 아파서 마음이 점점 아파지기 시작했어.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적어볼게 :)


뭐, 이젠 4년도 더 된 이야기라 나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자세히 그때의 마음을 돌이켜보면 그땐 매일매일 울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일부러 불쌍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더 나를 괴롭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아직도 왜 내가 그랬는지 모르겠어. 왜 더 나를 고통스럽게 못 해서 안달이 났었을까? 왜 더 슬프지 못해서 울려고 노력했을까? 왜, 나는, 더 불쌍해지고 싶었을까.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때 내가 했던 행동들이 지금 내가 단단해지는데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야. 물론, 아픔 없이 괴로움 없이 단단해지면 더 좋겠지만, 결론적으론 나는 아직 건강하고 단단하게 살아 있으니까. 그때의 내가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죽지 않아 다행이야. 정말로. 살아있게 해준 그때의 나에게 감사해.


너와는 아직 만나지 않았던 이때의 얘기를 종종 너에게 한 것 같다. 꺼내기 힘든 얘기일 수 있는데, 쉽게 꺼내는 내 모습도 신기하기도 해. 여전히 추운 날이 되면 그때의 고통스러운 모습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걸 보니 아직은 그때만큼 힘들었던 시기는 없었나봐. 언젠가 더 강렬한 겨울이 찾아오겠지? 그때의 나는 조금은 더 현명하게 단단해지면 좋겠다. 그때 썼던 글이 있어서 공유해볼게. 과거의 내가 쓴 글이라 지금 쓴 글과 조금 다른 내용일수도 있겠다.


다음주에는 '선택'으로 글을 써줘!


2022.03.27.

재요.



<그때 쓴 글>

https://www.facebook.com/kookakiko/posts/1542109752577194

그때의 내 모습. 나는 점점 젊어지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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