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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Apr 03. 2022

선택

(3)

재요에게.


지난주 너가 쓴 글을 읽고는 조금 놀랐어. 좋아하는 계절이 끝난 게 못내 아쉬워서 가볍게 건넨 주제에서 꺼낸 네 이야기는 무거웠으니까.

방금 너의 겨울을 한 번 더 읽고 왔어. 왜 너는, 너를 더 고통스럽게 하려고, 더 울려고 노력했을까? 왜 더 불쌍해지고 싶었을까. 나에게도 그 질문을 던져보려고 해. 왜 나는, 나를 더 힘들게 만들까?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들었던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그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그 안에 머무른 적이 많아. 단순히 무력감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언어가 없었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힘들게 해”라는 말을 갖게 되었어. 가족이나 애인, 아니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처럼 좋아하는 무언가 때문에 힘든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기도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야’라는 주문이기도 해.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에너지를 쓰는 건 애정이 담긴 행위라고 생각하거든. 좋아하지 않는 것까지도 품을 수 있을 만큼 내가 가진 힘이 무한하지는 않으니 좋아하는 것들에 더 마음을 써야지, 하고 다짐하는 거지.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나,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 '나'는 동시에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돼. 나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관심과 사랑을 쏟는 나머지 나 자신에게서 쉽게 깊게 상처를 받더라. 얼마 전에도 몇 가지 일들을 계기로 아래로 아래로 구덩이를 파며 내려가던 우울한 나를 관찰하다가, ‘아, 내가 이렇게나 나에게 집중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어. 마침 그때 읽고 있던 책*에서 만난 “우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생각이든 ‘나’를 향한 몰두와 관련이 있다.”라는 문장이 아주 정곡을 찔렀지. 나에게 몰두하는 만큼 나의 아픔에 심취했던 거야.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인지했지만, 나에게서 시작된 그 힘듦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어. 오늘의 질문, 왜 나는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지를 들여다보면, 나를 향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려고, 이렇게 고통을 줘도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려고 그런 것일 수 있겠더라고. 그러니 뭐 어쩌겠어. 그 마음 잘 알겠으니까, 매번 더더더 작정하고 힘들게 하기보다는, 가끔씩은 적당히 흔들자고 해봐야지.


그렇게 힘들 때의 나와 힘들지 않을 때의 나의 간극을 줄여볼 수 있을 것 같아. 별로 힘들다고 느끼지 않을 때의 나에게도 충분히 관심을 갖고 잘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할거야. 또 신경이 쓰이거나 바라는 마음이 생기거나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이 드는 것을 하나하나 문제 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연습도 해야겠지. 물론 그러다가도 또다시 나에게 나 좀 봐달라고, 내 아픔을 알아달라고 몸부림치겠지만, 아주 조금씩 의연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은 오롯이 나를 바라봐줘야 하는 때구나, 하고.  


사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야’라던 주문, 그러니까 ‘나의 힘듦은 내가 선택해’라는 선언에는 내가 선택한 그 힘듦을 거뜬히 안고 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더라.

무겁지만, 좋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기꺼이 흔들릴래. 그리고 너의 이야기도 궁금해. 다음 주에는 '너를 흔드는 것'에 대한 글을 써줘.


2022.04.03.

기요.



*하미나 작가님의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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