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앙요 Apr 10. 2022

나를 흔드는 것

(4)

기요에게.


네가 쓴

"‘나의 힘듦은 내가 선택해’라는 선언에는 내가 선택한 그 힘듦을 거뜬히 안고 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더라. 무겁지만, 좋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때문에 기꺼이 흔들릴래"

라는 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어. 처음엔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나중에는 그 힘듦, 내가 선택한 삶에는 어떤 게 있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다음 문장에 네가 "너(나)를 흔드는 것"에 대해서 써달라고 했더라고? 어떤 게 나를 흔들까 고민하다가 깜빡 잊고 일주일이 또 가버렸네 :)


내 삶에서 큰 흔들림은 언제나 존재했고, 지금도 나를 거세게 흔드는 것들은 한두 개가 아니지만, 대부분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것 같아. 지금의 경우, 미래에 대한 계획, 불안,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게 있다고 느껴져. 대부분은 지금 내 선택이 가장 최선인지, 앞으로의 계획이 가장 최선인지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되나 봐.그리고 이 감정은 아주 어린 유년기부터 시작된 나의 벗과 같은 감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 근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하진 않을 예정이야.


두려운 감정들이 나를 흔들 때마다 나는 줄 곳 해오던 것이 있는데, 그건 감정이 나를 흔들어 놓는 힘 보다 강하게 내 몸을 흔드는 거야. 좀 더 상세히 얘기해 보자면, 춤추는 거. 맞아, 클럽에 가는 거야.


내 클럽 인생은 성인이 된 직후 겨울, 창엽이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부산 서면의 '픽스'라는 클럽에 가면서 시작됐어. 그날은 평일이었고, 클럽은 장사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 정도로 손님이 없었지. 평소 춤추고 노는 거라곤 자신 있었던 나는 거기서 정말 열심히 춤을 췄던 기억이 나. 주변의 시선과 이성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있었지만 그보다 내 몸을 격렬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이 났나봐. 그리고 한 달 뒤, 입학 전에 스페인에 여행가서 클럽에 갔는데 백발의 할머니가 계시더라고. 정확히는 클럽보다는 펍이었는데, 그 할머니와 춤을 추며 '아 진짜 신난다'라고 생각했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클럽은 내 도피처가 되어줬어. 내가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할 때, 괴로운 몸, 피곤한 몸을 이끌고 클럽에 가서 홀로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면 내 몸의 우울도, 내 몸의 흔들거림에 잠시 달아나는 것 같았거든. 그렇지만 바깥공기를 쐬는 순간 다시 그 우울이들은 내 몸에 챡 달라붙었지만 말이야. 내 몸을 흔들면서 잠시 우울이들을 떼어낸 그 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버티게 해준 것 같아.


조금 시간이 더 지나고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 성별, 국적, 나이, 모든 걸 불문하고 그냥 이태원에서 만난 사람들을 단톡방에 초대하고 초대하다 보니 재미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어. 그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공유하고, 같이 춤추러 가고, 같이 새벽을 맞이하고, 술 마시고 했지. 그땐 내 몸을 흔든 게 비단 우울이를 떨쳐내기 위함보다는 진짜 재밌어서 했던 것 같아. 스페인에서 느낀 재미와 비슷한 재미.


내 몸을 흔드는 게 내게는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아. 시간에 쫓기고 체력에 허덕여 잠시 밤에 나가서 춤추고 돌아올 여유조차 없는 요즘의 삶에서 약간의 환기구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구. 언젠가 마스크를 안 쓰는 시기가 다시 돌아온다면 너랑 함께 춤을 추는 공간에 가보고 싶다. 그 공간에서 내 신나는 모습도, 우울이도 함께 마주해보고 싶어.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거든.


2022.04.10.

재요.


다음주에는 '스페인'으로 글을 적어줘!

작가의 이전글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