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앙요 Apr 17. 2022

스페인

(5)

재요에게.


너도 그렇듯이,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스페인은 ‘여행했을 때 정말 좋았던 나라, 그래서 또 가고 싶은 나라’더라. 볼거리나 즐길 거리도 정말 많고, 물가도 괜찮고, 음식도 다양한 편이니까. 게다가 너무 더울 때가 있긴 하지만 날씨도 좋잖아. 그래서 언젠가, 나도 스페인을 여행으로만 만났으면 더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 5개월을 살았던 곳 말고, 반짝- 하고 돌아오는 상상.


‘장소’로서의 나의 스페인은 진짜 복잡 미묘해.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팠던 곳이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들을 한 곳이거든. 처음으로 나의 일상을 온전히 책임졌고, 혼자 하는 여행, 엄마아빠를 내가 데리고 다니는 여행도 처음 해봤고. 언어가 다른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갔고,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새로운 주거 공동체, 생활 공동체를 만났어. 나를 녹일 것 같이 뜨거운 태양과 춥지 않은 크리스마스도 느꼈고, 아. 걸어가다가 팔에 새똥도 맞아봤어.


하필 거기서 아팠어야 했나 싶으면서도 나의 스페인을 ‘시점’으로 생각해본다면 16년 하반기에 나 자신을 제대로 마주했던 건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야.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 그때 나의 심연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았기에 생각해볼 수 있던 것들이 여전히 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 당시 광화문에서 한창이던 촛불 집회의 영향도 있었어. 거기 있을 수 없는 게, 뭐라도 함께할 수가 없는 게 너무 답답한 거야. 그전까지는 줄곧 내가 살던 세상의 바깥으로 관심이 향했었는데, 오히려 내가 살아온 세상의 밖에서 다시 그곳의 치열한 현실을 목격하니까 기분이 이상했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걸 깨달은 거야.  


큰 전환이 일었던 공간이자 단단하고 촘촘해지던 시간이었던 스페인이, 전혀 그립지는 않은데(라고 착각하는데) 다시 가는 그날을 기다리는 중이야. 별 이유도 없으면서 그냥 거기 살고 싶었던 쿠엥카도, 같이 가기로 한 메노르카도, 2016년이 아닌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 그때의 나를 다독여주면서 충분한 여유를 갖고 찾아갈거야. 그리고는 나를 깨부수는 기억과 함께 돌아올 거야. 그렇게 오래ㅡ 나의 스페인을 다채롭게 간직할거야.


2022.04.17.

기요.


+ 다음에는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글을 써 줘.  


클럽 때문에 갔는데 바다가 너 - 무 예뻤던 이비자


작가의 이전글 나를 흔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