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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Apr 24. 2022

같이 사는 사람

(6)

기요에게.


살아가는 건 모두에게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모두들 온도차가 있을 것 같아. 예를 들면, 누군가는 온전히 삶 전체를 책임지는 하루하루를 보낼 테고, 누군가는 책임을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고. 또또 누군가는 여럿의 삶을 모두 책임지며 살아갈 수도 있고. 그리고 난, 태어나면서부터 19년간 가족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당연히 내 삶을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했었나 봐.


그런 의미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레 내가 독립한 이후의 삶부터 생각나. 마치 그전에 가족들과 함께 산건, 함께 사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무엇인가로 살아온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 태어나면서 부터 선택된 삶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무튼 성인이 되기 전 가족들과의 삶은 '당연한'삶이었고, 이후에 내가 선택해온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당연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해.


간단히 독립 이후에 함께 거주한 사람들을 헤아려보자면,

16년 봄 여름 - A, B

16년 가을 겨울 - A, C

17년 봄 여름 - D

17년 가을 겨울 - A

18년 봄 여름 - E, F

18년 가을 겨울 19년 봄 여름 - 혼자

19년 가을 겨울 - G

20년 봄 여름 가을 겨울 - A

21년 봄 여름 - H

21년 가을 겨울 22년 봄 - G, H


총 여덟 명의 사람들과 살았었네. 기숙사에서 살 땐 셋이서 한 공간을 공유했고, 지금은 셋이서 각 방과 하나의 거실을 공유하면서 살고 있어. 지금 사는 모습을 보면 기숙사에서 어떻게 살았었나 싶어. 그땐 그게 재밌었는데, 지금 기숙사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아. 어쩌면 더 재밌을 수도 있고.


내가 혼자 살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지난 6년 반의 시간 동안 딱 1년만 혼자 산 이유는 두려운 마음에서였어. 정확히는 2018년 홀로 살 기회를 얻기 전에는 순전히 돈이 없어서 동료들과 함께 살았지만, 홀로 살던 2018년, 고생을 많이 하면서 수면장애가 심했는데, 그때 심장통증이 여러 번 왔었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그 이후에 많은 삶의 개선을 통해 통증은 정말 사라졌어!


지금 친구들과 셋이 사는 이유는 조금 다른 이유야. 지금 함께 살고 있는 G와 H는 각각 나와 둘이서 산 경험이 있고, 아주아주 오랜 친구들인데, 이들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셋이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20대 후반이 되면 누군가와 살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삶의 궤적이 달라서, 더 정확히는 사는 데 있어서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가 셋 다 확실해질 테니까. 그때가 되면 서로에게 설득과 설명을 하기엔 힘이 들 것 같았거든. 그래서 지금 셋이 살게 되었어.


그리고 아마도, 나는 동성의 친구들이랑은 마지막으로 거주하는 집이 될 것 같아.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게 정말 즐겁고 신나지만 내 집, 내 공간이 필요한가 봐.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거하는 건 바로 해도 좋아 :)


지금은 함께 사는 친구들과 그라운드 룰을 만들어서 살고 있어. 이 그라운드 룰은 몇 번 개정됐고, 최근에 한 번 더 정리됐어. 꽤 범용적으로 사용될 것 같으니,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여기에 공유해볼게!

[애인을 데리고 오는 경우 아래의 조항에 모두 저촉받는다]

1. 집에 데리고 오는 횟수는 2회가 최대이다. 이때 횟수는 대문을 들어오는 것으로 카운트한다.

2. 주당 최대 40시간을 머물 수 있다.

3. 1회 방문 시 기본 16시간을 차감한다. 이후 16시간을 넘어가면 추가로 시간을 차감한다.

4. 집에 들어온 후 밖에서 지내는 시간도 체류시간으로 친다. 다만, 단순히 짐을 넣거나, 화장실을 급하게 쓴다는 등, 5분 이내로 체류하는 건 카운트하지 않는다.

5. 방문 6시간 전에 카톡으로 방문 가능 여부를 물어본다. 답변은 질문에 체크표시로 통일한다. 방문 30분 전까지 답변이 없을 시 전화로 물어본다. 전화를 두 번 했는데 못 받거나, 받기 어려운 상황이면 그냥 애인을 데리고 오고, 데려왔다는 공지를 해준다.

6. 만약 집에 애인을 두고 먼저 나가야 한다면, 애인은 혼자가 된 후 한 시간 이내로 나가야 한다. 이런 경우, 카톡에 상황 설명을 '부드럽게' 적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게 한다. 다만 아침 출근시간의 경우 2~3시간 정도 허용은 가능하다. 

7. 위의 조항 중 부득이하게 단기적으로 조정이 필요한 경우, 모두에게 장문의 동의를 구하고, 큰 변경이 필요한 경우 협상을 제안할 수 있다.

지금은 위의 룰 기반으로 너도, 다른 친구들도 집에 놀러 오고 있어. 아직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시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기서 더 발전한 것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오늘은 유난히 여러 이야기를 두서없이 쓴 것 같아. 돌이켜보니 함께 살던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내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들도 항상 바뀐 것 같아. 앞으로도 바뀌어 갈 거고. 앞으로 어떤 지점들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며 살게 될지 궁금하다.


아, 이야기와는 좀 다른 부분이지만, 나는 누구와 사는지 보다 해가 잘 들어오는지가 훨씬 중요하긴 해! 그래서 이사를 간다면 해가 잘 드는 곳을 꼭 택할 테야!


마지막으로 지금 사는 친구들과 함께 이사하는 여정을 담은 <장충동 사나이들> 재생목록을 공유할게! 아직 완성본이 아니지만...!

장충동 사나이들 _ 유튜브


다음 글은 <8호선>을 주제로 적어줘!


2022.04.24.

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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