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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May 01. 2022

8호선

(7)

재요에게.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했던 건, 한국과 스페인에서 내가 경험한 주거 공동체보다 훨씬 다채로운 너의 동거 역사(?)를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근데 막상 글을 읽고는 조금 아쉽길래 왜일까 생각해봤어. 내 선택과 의지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나에게는 최근에서야 화두가 된 주제여서, 이야기를 마구마구 주고받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서 너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긴 느낌?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를 더 기대했나 봐. 그러니 앞으로도 난 너에게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자꾸 얘기하자고 할 것 같고, 흥미롭게 탐구해보자:)


이제 너가 나에게 준 주제로 넘어가 볼게. 내 일상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하철 노선인 8호선의 몇 가지 장면들을 소개해보려고.


1) 잠실역 2호선, 8호선 환승 통로

예전의 출근길도 언제나 붐볐지만, 잠실역 환승 통로는 엄청 넓고 길어서 그 모습이 아주... 웅장해. 2호선에서 8호선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8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사람들 무리가 양쪽 가득 크로쓰 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정확히는 그 장면에 속해있으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와. 게다가 각 무리의 선두에 있는 사람들은 꼭 전력질주를 하더라고. 그 긴 통로를, 심지어 한쪽은 살짝 오르막도 있는데 달려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출근길 풍경이야.


2) 복정역-산성역 지상 운행 구간

처음 8호선을 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이 지상철 구간이야. 캄캄하고 요란하게 달리다가 갑자기 환해지고 고요해지면 자연스럽게 또잉? 하고 폰에서 눈을 떼게 되잖아. 고개를 들어보면 한쪽 창문으로는 주로 풀과 나무들이, 다른 쪽 창문으로는 도로와 건물들이 지나가. 이제는 남위례역이 생겨서 조금 더 머물게 됐지만, 다른 세계로 진입한듯한 느낌은 오래가지 못하고 8호선은 다시 지하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창밖으로 멍 때리곤 했어.


3) 수진역 지하상가

마지막으로 보여줄 곳은 수진역이야. 학교가 많아서 그런지, 특히 떡볶이집들로 가득한데, 출구로 가는 길이 음식 냄새로 가득한 게 어색했고, 그렇게 가게들이 몰려있는데도 손님들이 골고루 있는 게 신기했어. 신흥역까지 쭉 이어지는 지하상가 스케일에도 놀랐고. 보통 어떤 지하철역을 생각하면 그곳의 바깥 동네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수진역은 그 역사 내의 모습이 먼저 생각 날 정도야.


특별한 이유가 없는 루틴이기도 했고, 게다가 지하철보단 버스를 좋아하는터라 평소에는 생각해볼 기회가 없던 소재였어. 언젠가 8호선을 떠나게 된다면 그땐 이 글이 더 흥미롭게 느껴질 것 같네. 믿거나말거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너도 다음 글에서는 '3호선'에 대해 적어줘:)


2022.05.01.

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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