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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요에게.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했던 건, 한국과 스페인에서 내가 경험한 주거 공동체보다 훨씬 다채로운 너의 동거 역사(?)를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근데 막상 글을 읽고는 조금 아쉽길래 왜일까 생각해봤어. 내 선택과 의지로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나에게는 최근에서야 화두가 된 주제여서, 이야기를 마구마구 주고받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서 너에게 먼저 마이크를 넘긴 느낌?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를 더 기대했나 봐. 그러니 앞으로도 난 너에게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자꾸 얘기하자고 할 것 같고, 흥미롭게 탐구해보자:)
이제 너가 나에게 준 주제로 넘어가 볼게. 내 일상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하철 노선인 8호선의 몇 가지 장면들을 소개해보려고.
1) 잠실역 2호선, 8호선 환승 통로
예전의 출근길도 언제나 붐볐지만, 잠실역 환승 통로는 엄청 넓고 길어서 그 모습이 아주... 웅장해. 2호선에서 8호선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8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는 사람들 무리가 양쪽 가득 크로쓰 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정확히는 그 장면에 속해있으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와. 게다가 각 무리의 선두에 있는 사람들은 꼭 전력질주를 하더라고. 그 긴 통로를, 심지어 한쪽은 살짝 오르막도 있는데 달려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출근길 풍경이야.
2) 복정역-산성역 지상 운행 구간
처음 8호선을 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이 지상철 구간이야. 캄캄하고 요란하게 달리다가 갑자기 환해지고 고요해지면 자연스럽게 또잉? 하고 폰에서 눈을 떼게 되잖아. 고개를 들어보면 한쪽 창문으로는 주로 풀과 나무들이, 다른 쪽 창문으로는 도로와 건물들이 지나가. 이제는 남위례역이 생겨서 조금 더 머물게 됐지만, 다른 세계로 진입한듯한 느낌은 오래가지 못하고 8호선은 다시 지하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창밖으로 멍 때리곤 했어.
3) 수진역 지하상가
마지막으로 보여줄 곳은 수진역이야. 학교가 많아서 그런지, 특히 떡볶이집들로 가득한데, 출구로 가는 길이 음식 냄새로 가득한 게 어색했고, 그렇게 가게들이 몰려있는데도 손님들이 골고루 있는 게 신기했어. 신흥역까지 쭉 이어지는 지하상가 스케일에도 놀랐고. 보통 어떤 지하철역을 생각하면 그곳의 바깥 동네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수진역은 그 역사 내의 모습이 먼저 생각 날 정도야.
특별한 이유가 없는 루틴이기도 했고, 게다가 지하철보단 버스를 좋아하는터라 평소에는 생각해볼 기회가 없던 소재였어. 언젠가 8호선을 떠나게 된다면 그땐 이 글이 더 흥미롭게 느껴질 것 같네. 믿거나말거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너도 다음 글에서는 '3호선'에 대해 적어줘:)
2022.05.01.
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