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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May 08. 2022

3호선

(8)

기요에게.


8호선 설명해준 거 읽어보니 엄청 귀엽더라 :) 자기만 아는 공간을 열심히 열심히 설명하는 친척동생의 모습이랄까... 특히나 수진역 지하상가는 나도 한두 번 걸으면서 '와 여기는 분식집이 몇 개야...' 했던 기억이 있네. 어떤 모습인지 기억나는 만큼 거기의 냄새들도 기억이 많이 나.


3호선은 공간의 변화에 대한 기억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억이 있어. 나도 몇 개로 구분해서 적어볼게.


1) 평일 6am.  출근길이야. 예전에는 출발지인 동대입구에서 교대로   2호선으로 갈아타고 구디까지 갔는데, 요즘은 아예 반대로 동대입구에서 을지로 3가로 가서 구디로 . 1분이라도 늦게 출근하고픈 마음이 만들어낸 루트야. 무튼 평일 아침일찍의 3호선은 (약간 예상했겠지만) 바글바글해.  자리는 가끔 . 정확히는 아침에 일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은  같아. 평균 나이대는 60 초반 정도 되는  같아. 대부분 출근 중으로 보이고, 삼삼오오 대화를 하는 분들도 많아. 유동량이 많은 특정 역에 많이들 내리시는 걸로 보아 교대근무나 유지보수  업무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  같아. 많은 분들이 에너지와 흥이 넘치셔. 물론 나는 겨우내 자리  구석을 찾아내곤 환승지에 내리는 시간에 진동알람을 맞춘  잠에 들어.


2) 평일 5pm. 퇴근길이야. 5시라서 유동량이 적을 것 같지만 이미 좌석은 만석이야. 사람들은 아주 다양해. 나이대도, 차림새도, 성별도, 끼고 있는 이어폰도 모두 다양해.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도 꽤 보여. 하긴 나도 이 시간에 퇴근하는데, 남들이라고 못 할게 뭐 있겠어?


3) 주말 낮. 대부분 너네 집에서 놀다가 우리 집에 가는 여정이야. 가락시장역에서 환승을 하려고 3호선을 타면 거의 종점이다 보니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다만 거기서부터 깊이 잠들어서 내려야 할 곳에 못 내리고 넘어간 경험도 몇 번 있어. 가락시장에서 잠들었다가 한강을 건널 때 즈음 깨면 어느새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이 지하철은 언제 즈음 안 바글거릴까?


시간대도 시간대이지만, 3호선 하면 떠오르는 한 사람도 있어. 이 분은 평일 오전 6시 10분 즈음 3호선 라인에 출몰하시는데, 매번 정장 차림에 검정 가방에 주황 쫀디기를 가득 담아서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판매해. 근데 어느 순간 사라져. 판매를 위해 지하철을 타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가기 위해 지하철에 탄 김에 파는 것 같아. 처음 봤을 때는 '저걸 누가 사...' 했는데, 꽤 많이들 사더라고? 심지어 서로 안부도 묻고 말이야. 그래서 매일같이 유심히 관찰해보니 그 물건이 쫀디기가 아니라 온열팩인걸 알게 됐어. 그리고 구매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재구매자인 것도 알게 됐고. 언젠가 같이 아침 지하철을 타고 그분을 보여주고 싶다. 마치 3호선을 자신의 가장 편안한 구역처럼 돌아다니는 그를.


나는 서울에 산지 7년 차가 되어가는데, 3호선을 제대로 탄 건 1년도 안 됐어. 이전에는 주로 6호선이랑 2호선을 많이 탔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낡은 3호선을 탈 때면 약간 당황스러울 때도 있어. 언젠가 3호선을 떠올리면 출근길과 퇴근길만 떠오를 것 같다.


다음 주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에 대해서 적어줘!


2022.05.08.

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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