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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앙요 Dec 31. 2022

크리스마스

(39)

재요에게.


세상에, 크리스마스 당일에 진작 올렸어야 하는 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2022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서야 깨달았네, 미안해. 너가 말하기 전에 깨달은 걸로나마 위안을 삼으며 얼른 적어보아.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뭔가 엄청나게 특별한 걸 하지는 않았고, 주변 사람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었어. 세 종류의 케이크를 먹었는데, 그중에 크리스마스라서 먹은 케이크는 하나뿐이고, 나머지 둘은 마침 크리스마스 즈음에 만날 예정이어서 먹게 되었어. 난 맛있는 거 먹는 걸 가장 좋아하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당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 있었던 방법 같아. 게다가 셋 다 내가 고른 거여서 초코였거든! 아, 가족들과는 케이크 대신 그냥 각자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먹었어. 사실 케이크에도 큰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평소에 먹고 싶었던 거 먹고 오히려 좋았지.      


어쩌다 보니 이번 크리스마스를 여러 사람들과 기념(?)한 셈이 되었지만, 사실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휴일은 아니야. 종교가 없기도 하거니와,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크게 좋아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그 감흥이 덜해진 것 같아. 빨강과 초록 그리고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날이지만, 그 안에 내가 적극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더라고.  얼마 전에도 포티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거든. 힘든 일에든 기쁜 일에든 담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겉으로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아진 게 아닐까, 하고. 근데 본인도 그렇고 K-장녀들이 특히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하시길래, 정말 내가 느끼는 게 작아진 것일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의심해 봐야겠다, 싶었어. 덜 힘들고 싶어서 덜 기뻐하기를 선택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으니까. 


근데 또 한편으론, 예전에 너도 무엇을 먹는지 보다, 누구와 먹는지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잖아? 나도 그런 것일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하나의 핑계인 거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따숩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핑계. 평소에 이미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 핑계의 특별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거라면, 앞으로도 오래 이랬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즐기는 크리스마스처럼, 나에게 충분히 집중해주는 생일처럼, 서로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우리의 기념일처럼,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비는 연말연시처럼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날들에 막 기뻐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을 것 같아. 크게 동요하지 않아도, 종종 충분히 마음껏 느끼면 되니까. 이 순간들을, 이런 일상을. 


23년에도 너와 나의 하루하루가 잔잔하게 반짝이길. 

해피뉴이어, 


2022.12.31.

기요.


+ 내일은 건너뛰고, 다음 주말까지 적어줘. 주제는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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