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땅에서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ce by the Water Mar 25. 2024

"러시아인들"

빨간 손님 

러시아인들이 찾아왔다.  남편이 생리를 Russians 라고 부른다. (^^;)   사십후반의 나이이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25일 만에 꼬박꼬박 찾아오는 러시아인들이다.  열흘 넘게 러시안들의 소식이 없어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폐경의 신호이거나 임신이거나.  아이가 생기는 달콤한 상상을 며칠 동안 했다.  임신 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조만간 알게 될 것을 굳이 미리 임신 테스트기의 단칼과 같은 흑과 백의 판정으로 꿈을 깨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 러시아인들은 찾아왔다.  


몇 주전, 베이비 스피릿으로부터 받은 것 같다는 확신이 든 메시지를 받고 ("크롸상 다운로드") 나름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역시 나는 자연 임신을 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  덴마크에서는 45세 이상 여성에게 인공 수정 절차를 시행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의사가 그랬다.  정말 아이를 갖기를 원하면 스페인에 가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아이를 갖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서서히 폐경을 앞두면서 이번 생애에 엄마가 되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나에게 솔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솔직하게 밝힌다. 이번 생애에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다음 생애에 이루어지리라.  이번 생애에는 없으면 없는 대로 아이들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리라.   


남편과 바닷가 근처의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생선과 해물을 시키고 화이트 와인을 당당하게 시켰다.  보통 술을 시키지 않지만 오늘은 러시아인들이 찾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임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애도하기 위해, 떠나보내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아이로부터 자유로운 (child-free) 우리 부부의 희망찬 삶을 축복하기 위해, 생선과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마음 놓고 시켰다.  레스토랑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와인을 음미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밀려오는 잔잔한 파도처럼 잔잔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Photo by Laura Barry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 vs 허브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