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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Sep 14. 2021

짜파구리

추억 속의 맛

얼마 전 아카데미와 깐느를 뒤흔들어 놓으면서 한국인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던 영화 <기생충>에 ‘짜파구리’라는 음식이 나온다. 영화상으로 조리법이 자세히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짜장라면과 포유류 이름의 라면을 합쳐서 끓이는 라면으로, 배경이 부잣집인 만큼 무려 소고기 채끝등심을 토핑으로 얹는 '고급 짜파구리'가 등장했었다. 영화 때문에 최근 갑자기 주목받게 된 음식이지만, 사실 오리지널 레시피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짜파구리를 처음 먹어본 것은 2000년도 즈음, 교회에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짝사랑하던 동아리 선배가 자기가 피아노 반주를 하는 교회에 오라고 했다. 피아노 치는 남자라니! 선배는 어쩌면 그렇게 멋있는 것만 하는지.

선배와 만나기로 약속한 교회 앞에서 ‘필승 교회’라는 간판을 보고, 나는 '사탄과 싸워서 필승을 하자는 뜻인가? 교회 이름이 강한 편이네.'라고 생각했다. 선배가 자기는 반주자석에 있으니 그냥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기에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3열로 놓인 의자 중 양쪽 2열에 군인들이 꽉 차게 앉아있고, 가운데 열만 텅 비어 일반인 몇 분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선배가 나를 알아보고 피아노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데 돌아서 나갈 수도 없고, 로봇 같은 걸음으로 적당한 자리에 앉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사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고 쳐다보지 않았겠지만, 사춘기 소녀의 자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알고 보니 '필승 교회'는 영외(營外)에 지어진 군인교회였고, 가운데 열에 계시던 분들은 군인아파트에 거주하시는 군인 가족들이셨으며, 내 짝사랑 선배는 인근 부대 연대장님의 아들이었다. 영외에 있는 교회니까 오는 민간인을 막지는 않지만, 목사님도 군목, 입구의 사무실을 지키는 사람은 군종병, 주일 아침이면 오와 열을 맞추어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는 군인 성도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교회였던 것이다.

끝까지 고백조차 못한 짝사랑이었지만 여하튼 나는 선배를 보기 위해 매주 교회에 나갔고, 어느새인가 나도 교회 사람들과 나름의 친분이 생겨서 선배가 대학에 가고 기숙사로 떠난 후에도 계속 '필승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처음에는 '아저씨' 같았던 군종병들이 '또래'가 되게 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알려준 것이 '짜파구리'였다.

크리스마스 교회 장식을 준비하며 청년부원들-절반은 군종병들, 절반은 군인 가족이거나 나처럼 어쩌다 이 교회에 다니게 된 민간인들로 구성된-끼리 간식 삼아 끓여먹은 짜파구리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그때는 아직 사천 짜장이나 쟁반 짜장처럼 매콤하고 해물이 많이 들어간 짜장면을 흔히 팔던 때가 아니어서, 짜파구리의 맛은, 거짓말 좀 보태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에서도 종종 짜파구리를 해 먹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가 않았다. 군종병 친구가 알려준 짜파구리는 짜장라면 2개에 포유류 라면 1개를 넣는 비율로, 먹으려면 최소한 2명이 필요한 레시피였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짜파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라면 세 개 분량을 혼자 먹을 수도 없으니, 짜파구리를 ‘같이 먹어주는’ 대신 내가 끓이고 설거지까지 한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진짜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팠던 날, 라면 두 개까지는 어떻게 혼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1:1 비율로 짜파구리를 만들어 보았지만, 내 입에는 역시 오리지널 2:1이 맞았다. 치사하지만 계속 가끔 남동생을 꼬셔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요즘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레시피를 보면 대부분 짜장라면과 포유류 라면을 1:1의 비율로 사용하던데, 아마 예전보다 사람들이 더 매콤한 맛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몇 달 전, 영화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를 보고, 잊고 지내던 오랜 친구랑 연락이 닿은 듯한 반가움이 들었다.

남편에게 “자기도 군대 있을 때 짜파구리 먹어 봤어?"라고 물으니, 먹어본 적 없단다. 아니, 육군 병장 만기 제대한 사람이 짜파구리를 몰라? 군대 헛 다녔네. 좋아, 내가 먹여주겠어.

그런데 남편은 나만큼 '생애 첫 짜파구리'의 맛에 감동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맛있네, 그렇지만 먹어봤다는 이유로 그렇게까지 으스댈 만한 맛은 아닌데? 정도의 반응.

하긴, 나에게도 어딘지 미묘하게 예전과는 맛이 다르게 느껴졌다.

"아, 이거 '미주용' 너*리로 끓여서 그런가 봐. 네모난 큰 다시마가 없잖아. 수출용으로 레시피가 조금 다르게 만들어졌나 보다. 원래 진짜 이것보다 훨씬 맛있다니까?"

우겨 보았지만, 남편은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아마 이미 훨씬 고급스러운 쟁반 짜장도, 매콤한 사천 짜장도 먹어 본 다음이라 더 이상 짜파구리가 그리 새로울 것도, 감동적일 것도 없었던 것 아닐까.


얼마 전, 한인마트에서 'Chapa Guri'라는 컵라면을 발견했다. 아하, <기생충> 영화로 짜파구리의 인기가 많아져서 아예 상품을 출시했구나.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가 이럴 때 쓰는 말이렷다.

호기심에 사 와서 먹어보았지만, 역시 스무 살 무렵에 먹은 그 '충격적일 정도로 맛있었던' 짜파구리의 맛은 나지 않았다. 남편의 말대로, 맛있긴 한데,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감동적인 맛은 아닌 정도. 영화에서처럼 고급스럽게 채끝등심을 얹어본다 해도 아마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녔던 회사 근처에 '이* 설농탕'이라는, 백 년도 넘었다는 설렁탕 집이 있었다. 줄 서서 먹는 유명한 맛집이었는데, 막상 그곳에서 밥을 먹은 나의 감상은 '이것보다 맛있는 설렁탕이 우리 동네에도 있는 것 같은데?'였다. 왜 이 가게에 줄을 서서까지 사 먹는 것일까, 싶었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같이 간 팀 선배가 

“요즘 기준으로 엄청난 맛은 아닐지 모르지만, 고기가 귀했던 시절에는 최고의 맛이었을 걸. 지금도 그런 맛과 전통을 유지하는 가게라서 손님들이 많은 거야."

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손님들이 대부분 연세가 든 분들이었다.


그때 그분들의 그 설렁탕과 같은 것이 나에게는 짜파구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로 나이가 많지는 않다고!"

라고 하고 싶지만, 내가 기억하는 감동과 충격의 짜파구리는 추억 속의 맛이라는 것만큼은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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