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치 않은 '만만한 부모 되기'
부모의 사랑은 아이들이 더우면 걷어차고, 필요할 땐 언제고 끌어당겨 덮을 수 있는
이불과 같아야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고(故) 박완서 님의 말씀이다. 무슨 뜻으로 하는 이야기인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요새 말로 '찰진' 비유이지만, 나는 이 말씀이 참 어렵다.
만 열두 살이 조금 지난 큰아이는 얼마 전부터 사춘기 소년이 되어 가고 있다. 불러도 잘 대답도 하지 않고, 말끝마다 불만을 표시하거나 투덜대고, 이유를 설명해도 잘 따르지 않는다. 가장 큰 원인은 십 대를 둔 많은 가정과 마찬가지로 '게임'이다.
우리 집의 게임 규칙은 다음과 같다.
게임 시간 : 월/수/금 각 50분, 토/일 각 100분 (화/목은 게임 없는 날)
평일은 숙제부터 마쳐야 게임 가능. 숙제가 없는 날은 30분 독서 마치고 게임 가능.
주말은 오전은 독서, 점심시간 이후 게임 가능.
20~30분 게임을 했으면 5분간 눈을 쉰 후에 다시 게임 가능.
조금 엄격한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가 모두 안경을 쓰는 데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기에 만든 규칙들인데, 적용하려고 할 때마다 입이 튀어나온다. 내 귀에까지 다 들릴 정도로 "아이, 씨."라고 해놓고 저도 흠칫하기도 한다. 벌써 몇 달째 적용 중인 규칙이니 이제 적응할 만도 하련만, 참으로 성실하게 매번 잊지 않고 투덜댄다. 매일같이 싸우기도 귀찮고 힘들어 슬쩍 눈감아 주기도 여러 번이지만, 그러면 스스로 깨닫고 다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한없이 게임만 하려고 들기 때문에 결국 화를 내게 되고 만다.
큰아이의 말로는 자기 친구들은 몇 시간씩 규제받지 않고 게임을 한다나 어쩐다나.
"그 친구들은 유전적으로 눈이 덜 나쁠 수도 있고, 부모의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마는 너의 성적을 친구들과 비교한 적 없듯이 너의 게임 시간도 친구들과 비교할 생각이 없어.”
라고 했지만, 애초에 논리로 납득하지 못해서 입이 튀어나왔던 게 아니라 마음이 받아들이기 싫은 것이므로 딱히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둘째도 같은 이유로 나와 싸우는 경우가 많다. 원래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는 아이인데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지고 무례한 단어를 쓰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어가 아무래도 서툰 탓이 클 테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것도 커가는 과정이겠지 싶지만, 큰아이의 사춘기적 반응 내지는 반항에 대응하느라 이미 지친 나에게는 더욱 버겁다.
그러다가도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거나 자기들 기분이 내키면 와서 안기거나 뽀뽀로 애정 표현을 하니,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절로 생각나는 요즘이다. 어른이 아이 앞에서 댈 핑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엄마도 엄마 노릇이 처음이고 때로는 감정이 상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는 달걀을 요리해 먹는 방법이 여섯 가지 정도 된다. 달걀 프라이, 스크램블 에그, 달걀말이, 삶은 달걀, 달걀찜, 포치드 에그(Poached Egg, 껍질 없이 끓는 물에서 익힌 달걀). 프라이도 노른자를 터뜨리느냐와 안 터뜨리느냐가 다르고 삶은 달걀도 반숙과 완숙으로 취향이 갈리지만, 일단 크게 나누기로는 이 여섯 가지이다.
거의 매일 아침 한 개씩의 달걀은 먹도록 하고 있는데, 문제는 아이들이 그날그날 먹고 싶은 달걀 요리가 다르다는 데 있다. 어제 스크램블 에그를 잘 먹길래 오늘도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더니, 오늘은 삶은 달걀이 먹고 싶었는데 왜 스크램블 에그냐고 항의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아침이니까, 이미 요리했으니까 그냥 먹고 가라고 하면 입을 삐죽거린다. 별로라는 거다.
취향대로 해주지 못해 유감이지만 집 주방이 호텔 조식 코너도 아니고,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는 시간이 빠듯할 때도 있고 다른 반찬들과의 어울림이나 남아있는 달걀의 개수 같은 것도 고려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달걀의 조리 방법 가지고 투정을 하고 있으면 결국 화가 치밀고 만다.
"아직 스스로 요리할 줄 모르지? 그럼 알레르기가 없는 이상은 주는 대로 먹는 거야! 얼른 먹고 학교 가!"
그렇게 학교에 보내 놓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영 좋지 않다. 아침인데, 조금만 더 살살 달래 볼걸 그랬나.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반찬 투정은 혼내는 게 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달걀이 자주 먹기는 몸에 무리가 가거나 값이 비싼 식재료였다면 조리법이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이다 보니, 프라이만 해도 서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이니 오버 이지(Over easy)니 오버 하드(Over hard)니, 온갖 까탈(?)을 부려 볼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을 식재료로 치면 이 달걀에 가깝지 않을까. 영양소가 듬뿍 든 양질의 식재료이지만, 매일 접하니 귀한 줄 모르겠고 만만하고, 심지어 가끔은 지겹기까지 해서 온갖 까탈을 부리게 되는.
요즘 들어 부쩍, 박완서 님의 저 말씀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아이가 짜증을 냈다가도 안겨오면 기쁜 마음으로 안아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 아이가 안심하고 마음껏 까탈을 부릴 수 있게, 부모는 늘 그 자리에 있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 언제든 찼다가도 다시 덮을 수 있는 이불처럼, '만만하게'.
그런데, 이 만만한 부모 되기가 참 만만하지가 않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