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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지 Oct 21. 2021

'남이사 정신'

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 좋은 점

한국 엄마로서, 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의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영어'를 생각할 것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긴급 상황용' 영어 몇 마디만 겨우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집 안에서는 한국어를 쓰자."라고 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영어에 익숙해졌으니, 한국에 돌아가도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대신 한국어나 국사를 따라잡으려면 고생깨나 해야할 것 같지만.

현대 사회에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는 것은 큰 이점이다. 여행을 가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데 편리한 것은 물론이고, 접근 가능한 콘텐츠나 학술 자료의 양도 거의 무한대로 커진다. 여기에 한국 교과 과정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로 인한 압박감을 고려하면, "미국에 가면서 너 직장 그만둔 건 너무 아깝지만, 적어도 영어 학원비는 아꼈다"라고 하는 친구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영어보다도 먼저 내가 미국에서 아이를 키울 때의 장점으로 꼽고 싶은 것은 '다양성', 여기 사람들이 쓰는 말로 'Diversity'이다.


주(州) 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텍사스는 교육열이 상당히 높고 공립학교의 수준도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한 번 씩 School District(지역 교육청 정도의 개념) 안의 학교들을 평가하여 그 점수를 공개하는데, 특이한 점은 학교 평가에 성적과 더불어 Diversity 항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인종 구성이 다양할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되며, 높은 Diversity 점수를 보유한 학교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물론 속으로 'Diversity sucks. Political correctness sucks.'라고 생각하는 백인 우월주의자가 한 명도 없을 리야 없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것을 입밖에 내려면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다양성이 왜 좋은 것일까?

'이민자의 나라'라는 것은 미국이 선진국이 되게 한 발판이었다, 문화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등의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 말고,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의 입장에서 이 '다양성'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게 좋은 점은 아이들이 '남이사 정신'을 좋은 쪽으로 몸에 익힌다는 점일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의 외모는 참으로 다양하다. 내가 아무리 살을 빼도 결코 될 수 없을 만큼 뼈대 자체가 가늘고 긴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고도비만인 사람들도 있다. 같은 학년인 아이들인데 키가 몇십 cm씩 차이 나는 경우도 많다. 몇 cm는 몰라도 몇십 cm 차이는 인종과 유전이 아니면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아 그렇구나, 하게 된다.

헤어스타일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박박 민 스타일부터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 온갖 색실과 함께 땋은 머리까지 다양하다. 타투(Tatoo)를 한 사람도 흔하다.

옷차림에 있어서도 청바지 차림, 레깅스 차림뿐 아니라 사리(Sari, 인도 전통의상)를 입거나 히잡(Hijab)을 두른 사람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패션에 민감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까, 유행은 커녕 그야말로 '낡아빠진' 옷을 입은 사람들도 왕왕 보이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별 감흥이 없다.

얼마 전 큰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도서관으로 봉사활동을 간 날 나는 터번을 단정히 두르고 셔츠 단추를 목까지 잠근 아이와 밝은 초록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헤비메탈 로커 같은 옷차림에 허리에 체인 장식을 두른 아이가 함께 사이좋게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주색 실과 함께 드레드로 머리를 땋은 아이도 있었다. 팔목에 타투가 있는 선생님은 머그컵을 들고 아이들이 책을 다 고르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렇게 외모가 다양하고, 그 다양한 외모가 인종 등 타고난 특성이나 종교와 연관 있는 경우도 많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에 대해 잘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비판적인 말은 '전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 않는다. 외모에 대해 하는 말은 옷이나 헤어스타일이 좋다, 잘 어울린다 같은 가볍게 넘길 수 있고 긍정적인 말 뿐인데, 그조차도 "Your dress is beautiful!" 같은 문장보다는 "I love your dress!" 같은 식으로, '내' 눈에 참 멋지다, 좋다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전자는 미미하게나마 평가하는 듯한 어감이 있고, 후자는 그냥 내가 보기에 멋지다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하다.

여담이지만, 처음 “I love your dress!”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구입처라도 알려줘야 하나? 한국 건데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웃기만 했더랬다. 다행히 구입처를 알려줄 필요 없이 그냥 “Thank you.”라고 대답하면 된다는 걸 곧 알게 되었지만.


여하튼,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아이들은 타인의 외모에 거의 무감각하게 되었다. 특히나 '여성의 외모'를 가혹하게 평가하는 사회에서 자란 나로서는 내 아이들이 타인의 외모에 ‘남이사’, ‘그런가 보다’ 이상의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다행스럽다.

한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고등학교 밴드와 댄스팀이 경연을 하는 행사에 간 적이 있는데, 여기 말로 curvy 하다고 하는, 마른 것과는 거리가 먼 여학생들도 딱 붙는 무용복을 입고 무대 중앙에서 경연에 참가하고 있었다. 댄스팀에 체중 제한이나 날씬할 것에 대한 요구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놀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속으로

'한국 같으면 저 정도로 체격이 좋은 여자아이는 댄스팀에 들어가기도 힘들 것이고, 저렇게 딱 붙는 옷을 입지도 않을 테고 입는다 해도 주변에서 엄청 놀릴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버린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공연을 보는 큰아이와 둘째아이를 보며 혼자 흐뭇했더랬다.

아이들이 타인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실례라는 것과 자칫하면 인종차별 발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계속 배우는구나, 싶어 안심한 적도 있다. 한 예로, 아이들은 멀리 있는 자기 친구를 가리킬 때 절대 인종을 언급하지 않는다. 여럿 중에 흑인 어린이가 한 명 있어서 "저기 흑인 아이 있잖아"라고 하면 한 번에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저기 파란 티셔츠에 노란 바지 입은 애"라고 옷차림으로 설명한다. 인종을 말하는 것 자체를 하지 말라고 배운 것이다. 나중에 크면 인종 관련 표현이 필요한 상황도 있을 수 있고 흑인이나 아시안이 인종을 블랙 코미디 소재로 써먹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아직은 구분을 못할테니 지금은 아예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배우는 듯 했다.



그 결과, 타인 뿐 아니라 본인의 외모에도 다소 무감각해져서 빨간 티셔츠에 파란색 바지를 입고 나한테

"음, 좀 너무...태극기 같은데? 둘 중 하나만 무채색으로 갈아입으면 더 멋질 것 같은데."

같은 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어깨만 으쓱, 하고 등교를 해버리는 강단(!)이 있는 아이들이 되었지만, 그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지.

나중에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가고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말들에 많이 노출되더라도 이 '남이사 정신'만큼은 잊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Header Photo by Sam Baly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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