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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Dec 08. 2020

우 쥬 플리즈 부둥부둥 미

아직 칭찬이 고픈 모든 직장인 어른이에게


올해로 삼땡. 칭찬받을 일이 잘 없는 나이다. 동화책 <인어공주>를 안 보고도 줄줄 외웠을 때 집안이 뒤집어지고, 난생처음 받은 시 쓰기 상장에 파티를 하고, 대학 합격 소식에 동네방네 떡을 돌렸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어른이 되면서 칭찬이란 어딘가 낯간지럽고 남세스러운 것이 됐다. 이제는 건강검진 결과지에서조차도 혼쭐이 나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K-장녀로 태어나 '잘한다' 소리를 듣는 게 평생의 숙제인 듯 살았다. 사회인이 되고서는 일 잘한다는 게 최고의 칭찬이라 믿는 MBTI로 성격이 변해버렸다. ESTJ 보다 더 확실하고 정확한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했고, 주어진 일을 잘 처리했을 때 큰 만족감을 느꼈다. 어릴 때 들었던 칭찬의 말들과는 조금 다르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그걸 이루어냈을 때 돌아오는 심리적인 보상에 위안을 받았다.


이런 성격은 잘 풀리면 진취적이지만 그만큼 반작용도 크다. 목표가 생기면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리다가, 원동력을 잃으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 너덜거리고 만다. 슬럼프가 얼마나 갈지는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있지만 가끔은 쉬이 이겨내기가 어렵다. 지금이 딱 그렇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도 만나고, 고민도 나누고, 우울할 새 없이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야 하는데 올해는 운도 따라주지 않는다. 취미 생활은커녕 일상도 빼앗겼다. 티브이를 켜봐도 그저 흉흉한 소식뿐이고 아이폰에는 확진자 알람만 쉴 새 없이 울릴 뿐.



웹서핑을 하다가 기사 하나를 읽었다. 타이틀은 '겉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불안증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 읽다 보니 왠지 내 얘기 같다. 일상이 불가한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지만 늘 내재된 불안이 있다. 나는 대체로 문제를 내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세상을 탓하고 남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못난 나'를 바꾸기를 바란다. "글쎄, 코로나 블루인가 보지!" 하고 넘기지 못하고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어쩜 이렇게 무기력하지?" 자문하는 나. 그게 더 큰 삽질인 걸 알면서도 그걸 반복한다.


올 한 해, 코로나 유행이 심해질 때마다 이런 주간이 찾아왔다. 11월도, 12월의 시작도 어김없었다. 비구름에 파묻힌 기분으로 열흘 째 자발적 격리 생활을 하고 있던 날이었다. 회사 메신저로 한 동료분이 우연히 이런 말을 해주었다.


'angie님 너무 멋있어요. 좋은 에너지를 주는 분이라 항상 응원해요 진짜.'


업무상 물어볼 게 있어서 잠깐 말을 건 찰나에 돌아온 말이었다. 이상했다. 그 텍스트를 보는 순간 스멀스멀 피어나던 우울감이 뚝하고 멎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증식을 멈췄다. 내가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나? 책상 앞에 앉아서 잠깐 멍을 때렸다. 기억 저편에서 몇 마디가 더 떠올랐다.


'와아 멋져!'

'너 이거 되게 잘한다.'

'넌 잘할 거 같아. 진짜 그렇게 될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내게 건넸던 소중한 말들. 가끔은 인스타 스토리 답장일 때도 있었고, 카카오톡으로 온 메시지일 때도, 사무실 어딘가에서 가볍게 들은 인사말일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일으키는 것은 그 몇 마디였는데.


이유모를 긴장이 풀렸다. 야무지게 잘 해내고, 빈틈없이 처리하고, 완벽하게 끝내는 것보다 더 값진 것. 혼자서 저 말들을 한참 동안 곱씹었다. 쓸모없는 자책을 거듭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꽤 좋은 사람'인 나를 외면해왔는지.



얼마 전 오스카 와일드의 문장을 모아둔 "오스카리아나" 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 있다.


요즘엔 우리 모두가 너무도 궁핍해서 기분 좋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칭찬뿐이다. 우리는 오로지 칭찬으로만 보답할 수 있다.
(Nowadays we are all of us so hard up, that the only pleasant thing to pay are compliments. They're the only things we can pay.)

내가 덮어버린 나는 따뜻한 사람들의 한 마디를 통해 다시 햇빛에 드러났다. 코로나 블루와 함께 찾아온 우울도 그 응원의 말들 덕분에 조금씩 사라져 간다. 점점 더 무미건조해지고 각박해지는 세상, 우리 서로를 향한 칭찬과 응원의 한 마디만큼은 결코 아끼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아직 칭찬이 고픈 어른이이니까.

  

thanks to Rose.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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