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쫓아 이민 가는 스물하나 새 신부
요즘 향수를 쓸 일이 적다. 사실 어디 나가는 곳 없어도 방 안에서 그저 뿌리던 나인데, 일주일의 절반이 넘는 날들을 커피를 파는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향수를 더 사고 싶다- 생각하다가 내가 가진 향수를 세어보았다. 핸드 로션이나 오일 등을 제외하고도 열다섯 개였다. 가족과 나누어 쓰는 향수까지 헤아린다면 아마 스무 개쯤 되겠지.
나는 오감이 꽤 섬세한 것 같기도 하다.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란 늘 어렵지만 남들이 예민하게 굴지 않는 것들을 참지 못하곤 한다. 덕분에 커피의 맛을 맞추고 거슬리는 소음을 잡아내고 약간 상한 음식을 냄새로 찾아내며 살았지만 아직까지도 헷갈리는 건, 나의 예민함의 출처이다. 축복에서부터 온 것일까, 저주에게서 온 것일까.
가진 예민 덕에 오 년쯤 후의 미래를 가까운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나는 어디에서나 사랑받을 수 있지만 모든 곳에서 환영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애인은 같은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 만났다. 나는 조금은 빠르게 삐딱선을 탔고 애인은 조금은 대담하고 굵은 맘을 지니고 자랐다. 나는 우리의 연애를 설명하더라도 그저 유별난 친구 사이로 치부되는 상황을 매일 마주한다. 물론 연애하는 내가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커다란 일부이기에 이를 부정당하는 것은 썩 좋지 않다. 그건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내 앞에 펼쳐진, 공인된 사회다.
우리가 이 나라 생활을 정리하고 타국에 정착하는 것이 도망자 신세 같으려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삶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덜 중요한 요소를 두고 더 나은 환경을 찾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나는 이 삶 속 관계들에서 배워왔다.
서른 즈음에는 타지인 그곳 생활에 적응하려 한다. 나는 무엇을 두고, 무엇을 챙겨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