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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 Apr 17. 2024

우리의 결혼 담

좋아서 항상 같이 있고 싶은데

퇴근을 하면 나를 만나는 삶, 그조차도 애인은 부족했는지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을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린 오늘 일을 마친 저녁, 서로를 향해 긴 버스를 타고 왔다. 우리가 결혼 담을 주고받은 지 한 두 달쯤 되었을 때였던가. 애인은 본인 어머니의 모국에서는 우리의 혼인 기록을 받아준다며 때 지난 복수 국적을 취득을 위해 애를 좀 썼다. 당시 결과는 어렵게 되었지만 필요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린 낙담했다. 서로 말을 안 했지만 각자 서울에서의 우리 둘 결혼 생활을 상상하며 암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인은 우리의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마침 우리가 다음 세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쯤 한국에선 처음으로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 출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덕분에 우린 솟아날 구멍을 보았지만 그 구멍은 쥐구멍보다도 작고 좁아 보였다. 함께 마주 보며 이 사실을 꺼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래서 더 꺼내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침엔 어머니에게 타국에서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키우겠노라 말했다. 지난번 결혼이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낸 둘째 아이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그때 못지않게 당황하셨겠지. 나는 이제야 스물을 겨우 넘겼고 애인은 그보다 삼사 년을 더 넘겼으니 분명 우린 120세 시대에 맞지 않는 영원을 약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순간의 감정과 상황에 매몰되어 급히 서류로 우리의 관계를 적립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그렇기에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에게도 나와 애인의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왜 어머니와의 결혼을 결심했고 실행했는지 물었다. 아버지의 답은 만난 지 사십 년이 되어가는 어머니와의 세월만큼이나 낭만적이었다.

“좋아서, 너무 좋아서, 항상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명목은 결혼뿐이었으니까”

사실 아버지의 대답은 뻔했고 우리 가족 중 누구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정말 삼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머니를 가장 좋아했고 늘 함께 있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아버지를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한국의 여느 아버지들은 바깥세상을 더 즐긴다던데, 우리 아버지는 왜 만나는 친구가 없을까- 이젠 이해한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연인, 가족이라는 것을 이젠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이 지금 내 옆 자리에 앉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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