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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 Apr 24. 2024

다시 어머니의 나라로

감출 필요 없는 우리

무지개 빛 기대로 가득 찼던 아침에 순식간 먹구름이 꼈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대표부 담당자는 정확한 확인을 위해 내무부 이민서에 연락해 보라는 답까지 남겼다. 거의 다 온 것만 같았는데-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우선 근무 중인 애인에게 이 근황을 알리고 조금 더 검색 창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우선 대표부 한국 지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민 관련 글과 국적 취득 관련 글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본국의 여권을 처음 신청할 시 필요한 서류들을 보고 있는데, 왜인지 애인이 해당되는 경우일 것만 같았다. 바로 대표부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구구절절 애인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로 했다. 담당자 분과 한 번 더 인사를 나누고, 애인의 부모님은 양국에 혼인 신고가 되어있는 상태이지만 그분들의 아이인 애인은 한국에서만 출생 신고가 완료된 상황이라는 이야기와 당국 이민을 준비 중이며 그로 인해 국적 취득을 원하지만 동시에 한국 국적 포기는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담당자분께서는 당국에서 태어나 자란 국민의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이민법이 있다며 어머니께서 화교 분이신지 먼저 여쭤보셨다. 나는 내심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는 국제결혼을 위해 성인이 되어 한국에 오신 분이라는 답을 했다. 그러자 담당자분께서는 이전에는 당국에서 1년 이상을 살아야 나왔던 국적이 올 해부터 바로 나오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희소식을 주셨다. 필요하다면 대표부 한국 지사에서 서류를 떼어가 이민 직후 내무부 이민서 담당 부서에 제출만 해도 된다는 이야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자세하고 정확한 이야기는 당국 이민서에 직접 통화를 권한다는 담당자분의 말과 함께 나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이제 내 몫은 끝났다! 할 줄 아는 언어는 한국어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다! 이후의 일 처리는 애인에게 맡기기로 했다. 국회의원 선거 날 만나 점심시간을 피해 이민서에 통화해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선거 날인 수요일도 나는 커피를 팔았다. 애인은 먼 길을 지나 내가 일하는 가게로 왔다. 애인의 친구 도도 양도 와서 함께 나를 기다려줬다. 높은 사전 투표율만큼이나 쉬는 사람도, 놀러 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날따라 포장 주문이 배가 넘게 들어오고 매장에도 손님이 줄곧 이어졌다. 진이 빠진 상태로 퇴근한 나와 애인, 그리고 도도는 녹초가 된 나를 끌고 근처 공원에 가서 앉았다. 공을 던지고 구조물을 오르고 자전거나 씽씽이를 타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한 번은 튀고 있는 가벼운 공에 어깨를 맞기도 했다. 애인과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보육관을 가지게 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뛰어놀고 살아갈 곳이 우릴 자연스레 맞이할지도 궁금했다.


애인이 전화기를 들고 국제 번호를 눌렀다. 통화 수신음이 긴가 싶다가도 금방 수화기로 목소리가 넘나 들었다. 이민서에서 바꿔준 담당 부서 전화를 또 기다리고 애인의 중국어를 마냥 듣다 보니 통화가 끝났다. 대표부에서 알려준 내용이 정확했다. 한국 대표부에서 미리 서류를 떼어가 이민 후 여섯 달 안에만 서류 제출을 완료하면 된다는 이야기만 덧붙여 들었을 뿐이다. 너무 기뻤다. 우리의 관계가 인정되는 곳에서 비자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니! 며칠이 지나고 나서 들은 이야기지만, 이 순간의 내가 애인에게 이제껏 보인 모습 중 가장 신이 나 보였다고 한다. 기쁨을 감출 수도, 감출 필요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날 밤 애인과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와 노션에 결혼에 관한 새 페이지들을 만들었다. ‘결혼식’, ‘신혼여행’, ‘이민’ 그리고 ‘돈벌이’에 대해 궁리할 페이지를, 우리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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