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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 Apr 22. 2024

이민 갈까?

우리의 결혼을 받는 나라로

애인 어머니의 나라에서 혼인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끔 혼자 생각했다. 애인도 그랬나 보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도 가깝고 애인과 함께 살아남을만한 언어 소통도 되는 지역이며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아무런 연이 없는 나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의 혼인 신고 서류를 받아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니, 찾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애인은 그 나라에서 출생 신고가 되어있지 않은 단일 국적 보유자이자 성인의 나이가 된 지 조금은 한참 넘어 그 나라 국민이 될 수 있는 법은 복수 국적을 탐탁지 않아 하는 한국의 국적을 포기하는 방법뿐, 그런 경우조차 검색 창에선 흔치 않았다. 그렇다고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애인이 그 나라에서 청소년 정도의 언어 소통 능력을 가지고 국적을 바꾸어 살기엔 너무 커다란 벽이 존재했다. 혼인 신고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대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더 이상 내국인이 아닌 애인은 비자를 얻기 위해 특정 회사에 종속되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영주권을 얻는데도 우린 부부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삶과 가깝지 않은 미래가 그려졌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암흑 같았다.



그날도 각자 남몰래 이민을 검색하고 있었다. 아닌 척, 개인적인 할 일을 하는 척, 각자 컴퓨터 앞에 전화기를 세워 두고 영상 통화 중이었다. 시덥잖지만 소중한 일상 얘기, 의성어들이 오가다가 갑자기 애인은 급히 나를 불렀다.

“‘혈통 이민’이라는 게 있대!”

어떤 한 블로그에 게시된 글이었다. 그러나 그 블로그에만 게시된 내용으로 온라인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혈통 이민’이라는 그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대표부에 문의가 필요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근무하는 애인을 대신해 내가 전화를 걸기로 정하고 그 바로 다음 영업일 아침 알람을 맞췄다.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눈이 띄었다. 아홉 시가 되려면 두어 시간이 남아 아버지의 커피를 내려드리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치를 보며 방 문을 닫고 혹시 열린 창 밖으로 말이 새어나갈까, 통화음을 가장 작게 줄였다. 대표부는 전국에 두 곳이 있었는데, 나는 애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담당하는 부산 지부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내 용건으로 연결되었던 서울 지부 담당자분보다 조금은 더 능숙한 한국어에 좀 안심이 되었지만- ‘혈통 이민’이라는 명칭과 그와 비슷한 개념의 이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대답에 나는 또다시 실망했다. 우리의 결혼을 받아줄 나라로 가는 벽은 우리의 기대보다 더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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