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김 May 06. 2024

알리지 말고 우리끼리 넘어가자

너희가 다칠까봐, 지키고 싶어서 그래

나는 오픈리-퀴어이지만 애인은 벽장 안 신세다. 손을 잡는 것은커녕 팔을 잡는 것 마저 눈치를 볼 때도 있다. 애인이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겠다 여겨지는 회사에서 근무 중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위 커버 사진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얼굴이 전부 드러난 사진은 아니지만 가까운 지인이라면 쉽게 눈치챌 만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로서 인정받기 위해 우리를 알려야 한다. 이렇게 평범히 살아가는 우리가 평범하다는 그 일상을 원하고 있다고- 세상은 모르는 듯하다. 우리만큼 이토록 평범한 것을 바라는 이들은 없다는 걸 말이다.



“굳이 알릴 필요 있어? 알리지 말고 우리끼리 넘어가자.”


애인과 나의 부모님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이다. 세상과는 타협이 필요하다고, 그 누구도 자신을 전부 내보이며 살지 않기에 너희 관계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부모님들의 말씀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이 퀴어 당사자가 아닌 당사자의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타당한 말들이다. 그렇지만 나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긍정이 아니라 주변인들의 인정이라는 것을 아실까?


우리가 받을 상처를 걱정하는 마음을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걱정하는 마음의 행동을 조금 달리해보면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주 못되게 말을 하자면- 그렇게 상처를 덮고 가려는, 당사자가 아닌 이들 덕분에 우리의 상처가 곪고 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바이럴 해야 한다. 바이러스 마냥 자신을 세상에 퍼뜨려야 한다.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하고 이어나가는 맥락 또한 같다. 우리는 여기 있고 살아간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에게 작은 관심조차 없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가시화되지 않았기에, 그렇게 우리는 그들 안에 영영 존재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평범함을 누릴 수 없다.

이전 06화 너 지금 스물한 살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