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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김 May 01. 2024

너 지금 스물한 살이야

다른 사람 안 만나봐도 되겠어?

이번 제목과 부제목 속 문장은 결혼 이야기가 처음 나오던 시기에, 우리가 그 누구에게도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그 시기에, 애인이 자주 꺼내던 말이다. 결혼을 하든, 하겠다는 결심을 하든, 나는 정말 사회적으로 보아도 어렸고 인류의 길어진 수명과 빗대어 보아도 어렸다. 우린 우리의 나이와 사회적 위치를 잘 알았다. 그렇지만 결혼을 할 때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의 많은 부분들을 아는 친구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자연스레 축하해 주거나 애인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를 주고받고 있는지 묻는다. 나는 바로 이 부분이 결혼에 관한 논점이 되어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 커다란 결정인 것은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 이의를 표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남은 여생-나의 경우에는 아주 많이 남은-을 보내는 중 함께할 동반자를 정하는 일이 어찌 경할 수 있겠는가. 나의 태도 또한 이와 같다. 이 시점에서 모든 이에게 묻고 싶다. 내가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나의 결정까지 어리고 가벼운 것일까?


내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의 선택이 가볍다는 건 아니야. 너무 섣부를 수 있는 결정이라는 거지.” 섣부르다는 말 또한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지 않으면 결혼을 결정하는 것에 섣부르지 않을 수 있는가? 되려 나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을 때 좋을 것 같은 나름의 목록들을 늘어놓을까 한다.



첫째, 삶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강해진다. 나는 연애를 하고부터 더욱 미래의 나를 더 빛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작게는 생활비를 버는 것부터 크게는 내 삶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것까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걸맞은 사람, 더 도움이 되거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둘째, 삶에 대한 부담감을 나눌 사람이 생긴다. 반대로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삶에 관한 부담감과 피로함을 함께 나누어 짊어진 사람이 생긴다는 것, 이것만큼 삶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는 관계가 또 있을까?


셋째, 서로를 인정하기가 더 쉽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저 사회적 책임감과 부담감이 불어날 것이기에 그렇다기보다는, 나의 몸과 마음이 굳어질 것을 경계한다. 언젠가 함께 살아갈 동반자를 구하게 된다면 굳어버린 마음보다는 말랑한 아이 같은 마음으로 맞이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넷째, 아직 나아갈 길이 길다.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상상만 해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관계 속에서도 우리가 자라는 모습은 어릴 때일수록 더욱 극적이지 않을까?





언제부터일까, 결혼 이야기가 잦아지고부턴가, 아님 나의 결혼에 대한 의지를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표현했을 때부터일까. 이 문장을 말하는 화자였던 애인은 점점 더 우리의 미래를 세밀하게 상상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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