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김 Jul 15. 2024

우리의 보색 관계

서로의 빛을 꺾지 않고 하얀빛을 내자

애인과 결혼을 약속했다. 구두의 약속을 넘어서- 마음을 전하는 길지 않은 문장들을 차례차례 읊으며-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익숙하게 지내던 방에서 나와 낯선 방의 하얀 상을 사이에 둔 채- 애인이 사랑하는 노래 속에서-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다.


다가올 내년 가을, 우리의 결혼식에 오지 않겠다는 내 부모님의 말씀에 애인은 적잖이 상심했다. 지난 몇 달간 부모님과 우리가 쌓아온 시간들이 무용지물 되다 못해 투명한 벽으로 자리했으니 그럴 수밖에...

나도 마찬가지로 크게 아팠다. 당연하게 부모님의 태도가 이해되는 나 자신부터, 부모님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가족의 말까지 모두 예상했던 일이지만 실제로 겪는 일은 또 다른 것이었다. 애인은 그런 우리에게 '더는 타인을 이해한다고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 말자'라고 젖은 흙 같은 말을 건넸다.


나를 키워낸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 결혼식에 오지 않고 우린 그들을 위해 잦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내 애인이 부모님 눈 밖에 든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자립할 기반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같은 성(sex)을 가진 퀴어커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내고 나니 더욱 내게 바람 빠지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린 덕분에 무언의 약속을 하나 더 했다. '나 자신을 이해해 줬으면-하는 마음에 서로를 상처 입히지 말자'




애인과 나는 비슷한 것도 다른 것도 많다. 그런 우리의 관계가 보색 관계 같다는 생각을 혼자 종종 했다. 빛깔은 이렇게 더 다를 수도 없을 만큼 다르지만, 겹쳐지면 하나의 밝은 빛을 내는 보색들처럼 우리의 관계는 함께일수록 빛났다. 마침 각자 좋아하는 색도 푸른 바다색과 다홍색으로 정확히 보색 관계를 띄고 있었다.


이 글집의 문을 여는 이유 역시 복잡하지 않다. 가까운 어른들은 들여봐 주지 않는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게, 건강히 돌볼 수 있을까- 마치 육아 일기를 적는 양육자처럼 우리 관계의 일기를 적어내야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랐다. 서로의 빛을 꺾지 않은 채 하얀빛을 내고 싶은 우리의 원이 조금 더 현실화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 필자와 그의 애인은 성숙하거나 완전한 관계를 단언할 수 없다. 각자의 형태와 상황은 모두 다르고 그에 따라 이상적인 관계는 늘 모양이 다르다. 우린 우리에게 맞는 관계를 만들어나갈 테고 그를 바탕으로 한 이 일기에 독자 여러분들이 첨언과 나눔으로 동참해주었으면 한다.


긴 서문을 끝내며 선선한 인사말을 건네고 싶다. 무심은 사랑과 가깝지 않으니 그 대신 멀리에서라도 응원을 보내주시길, 필자 또한 그러할 테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