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기
지난 칠월, 열 달을 기다린 애인의 서울 발령 소식이 났다. 이미 거의 내정된 일이었음에도 우린 끝까지 불안해했다. 이미 정해둔 6개월 단위의 계획들을 다시 엎고 내년 결혼식을 급하게 준비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안정을 찾고 싶었다.
애인은 내가 부산으로 내려오는 것을 늘 반기진 않았다. 내게 경제적으로도 늘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페에서 유동적으로 일하는 나와 달리 애인은 점심 휴게 시간에나 잠깐 함께할 수 있으니 효율적이지 않다는 애인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편은 편하지 않았다. 내 입장은 이랬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가 어려운데, 부산 방문은 일상 속 환기를 해주며 애인까지 만날 수 있는 에너제틱한 이벤트였다. 우린 서로를 이해했지만 언제든 모든 마음이 수렴될 순 없었다.
내가 집을 떠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결혼을 앞두고 돈을 끌어모아야 할 시기에 본가를 나온다는 것은 경제적으론 정말 비효율적이었고 우린 금전적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중심, 어머니의 고향에서 보증금 500만 원인 집에서 홀로 살겠다고 했을 때 애인은 물처럼 자연스레 말했다. 내가 무얼 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내 마음은 역시나 딱딱히 굳어있었고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애인의 말은 날 물러지게 했다.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애인은 당시의 내가 너무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내 손을 부여잡는 이유가 자신의 동정이 아니길 바랐다고도 했다. 애인에게 사랑은 상대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기에 자신의 사랑의 정의와 우리의 사랑의 모양을 깊숙이 생각해 본 결과였댔다.
애인은 ‘낭만적인 현실주의자’의 삶을 표방한다며 자주 이야기한다. 현실주의자가 어떻게 낭만적일 수 있느냐며 물을 수도 있겠다만 애인은 정말 그 삶의 형태를 살아가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효율적인 낭만주의자’다. 이 조합 또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만남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다면적이니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어주길 바란다. 더욱 깊은 우리 관계의 이해를 위해 각자의 성향이 담긴 짤막한 소개글을 가져왔다.
낭만적인 현실주의자, 블루(필자의 애인).
불우한 바닷가에서 나고 매일 손이 트는 어머니-목소리 큰 아버지 밑에서 끈끈한 삼 남매의 막내로 자랐다. 돈으로부터 자유함을 찾고 이루어내며 가족과 살아간다.
효율적인 낭만주의자, 엘리(필자).
넉넉한 수도권 가정에서 나고 신발을 모으는 어머니-일 중독 아버지 밑에서 큼직하지 않은 연년생 언니와 함께 자랐다. 예쁜 것들의 쓸모를 찾고 수집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곳에서 다르게 자라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 우리가 다른 모양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유사한 부분들이 다른 것만큼이나 많아서- 그 유사점들은 서로를 더 안락한 품처럼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상대 언행의 의도를 착각하게도 한다.
부산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친 어느 주말, 애인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답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평소라면 충분한 이해로 넘어갈 애인의 말 위에 다양한 문제들이 겹치고 쌓여 숨구멍을 뚫는다는 게 펑- 터지고 만 것이다. 결국 애인은 늦은 밤 오래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달래다가 불편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할 순 없겠지만, 현실적인 문제에서 애인은 좀 더 거시적 관점을 제시했고 나는 세밀한 이야기들로 눈물지었다.
애인의 말과 마음은 나와 다르고 그 다름은 분명 내게 도움이 된다.